하 (오호 십육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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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된 이래 남흉노의 철불부(鐵弗部)는 [[오르도스]]에서 일대 세력을 구축하였다. 철불부의 선조는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 흉노의 [[선우]]였던 [[어부라]](於夫羅)의 조카뻘인 철불 우현왕(右賢王) [[거비]](去卑)로 [[조조]](曹操)의 신임을 받아 남흉노를 관할하였으며 한나라의 유씨(劉氏) 성을 사용하였다. [[310년]], 거비의 손자 유호(劉虎)가 [[선비족]](鮮卑族) [[탁발부]](拓跋部)에게 본거지인 산서 일대를 빼앗기고 오르도스 지방으로 옮겨와 할거하면서 [[전조 (오호십육국)|전조]](前趙), [[후조]](後趙),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에게 차례로 협력하였다. 유호의 손자 유위진(劉衛辰)의 대에 다시 탁발부에 패하여 오르도스를 상실하고 전진의 영내로 이주하였다. [[376년]], 유위진은 전진의 탁발부 토벌에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오르도스로 다시 이주하였으며 탁발부, [[유연 (나라)|유연]](柔然)을 복속시켰다.
 
[[386년]], 탁발부가 다시 성장하여 대(代 ; 후에 [[북위 (북조)|북위]]{北魏}로 국호를 바꿈)를 건국하고 [[391년]]에 북위의 원정군에 유위해가 살해당하면서 철불부는 일시적으로 멸망하였다. 유위진의 아들 유발발(劉勃勃)은 오르도스 서남쪽의 고평(高平)까지 도망쳤으나, 그후에도그 후에도 북위의 토벌군이 여러차례 공격해 와 유랑 끝에 [[후진 (오호십육국)|후진]](後秦)에 몸을 의탁하였다. 후진은 북위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유발발을 오르도스에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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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라의 문물 ==
현존하는 하나라의 문물로써는 통만성 유적지, 대래성(代來城) 유적지, 태하진흥전(太夏眞興錢)(419년), 전구묘지(田口墓誌)(420년), 대하석마(大夏石馬)(424년), 시문조상(施文造像)(429년), 기년문서로써 [[돈황]], 투르판 문서 수점이 있다. 또한 현존하지 않는것않는 것 중에는 대하용작도(大夏龍雀刀)(413년) 및 통만성 남비 (統万城南碑頌)(419년)등이 알려져 있다.
 
== 같이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