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카와 히데아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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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일반적으로 히데아키는 우유부단하고 암우한 무장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나, 이것은 세키가하라의 배반에 대한 인상이 강한데 따른 것이다. 특히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였던 [[우키타 히데이에]]는 도요토미가 가문을 위해 결사항전을 치른 것에 비해,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과거 히데요시의 양자였음에도 결과적으로 도요토미 가문에 칼을 들이대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혹평이 많으며, 배신했다는것배신했다는 것 만으로 [[오다 노부카쓰]]같은 암군이란 결론을 내린 문헌도 있다. 하지만 마쓰오 산을 점거해 유리한 위치에서 움직여 승리를 결정지은 점과 결국 세키가하라의 승리측에 든 것은 선악과 관계없이 공적으로 평가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세키가하라는 거대한 전투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라는 암우한 인물의 배신에 의해서 결정지어졌다는 혹평도 있다.
 
히데아키는 첫 출전인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울산성 전투]]에서 적에게 포위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구출하는 등 무공을 올렸는데, 이에 대해서도 용맹함으로 평가하기도 하나, 첫출진의 공명심으로 인한 대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경솔한 행동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형제를 제치고 히데요시의 양자가 된 사실이나 정치능력도 비젠 오카야마에서의 통치로 발휘한 점을 미루어, 단순히 암우한 인물이었다고만 단정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