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미네 가나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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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
=== 선수로서의 평가 ===
미국 본고장의 슬라이딩이나 태클 등 격렬한 플레이 스타일은 당시 '스커트를‘스커트를 입은 아가씨 야구'라고야구’라고 야유를 받던 일본 프로 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드래그 번트 등의 새로운 전술이 요나미네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불린다. 고향인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샌프란시스코 49ers와 요미우리의 선수 시절, 주니치의 감독 시절 입었던 유니폼 등이 전시되어 있다.
 
1994년에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ref name="nfljapan"/>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한 미국인 선수는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은 2013년 현재까지 요나미네가 유일하다.
 
=== 일본에서의 생활·감독으로서의 평가 등 ===
[[일본어]]는 일상 회화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읽고 쓰기는 거의 못했고 섬세한 표현에 서투른 부분도 있었다. 그가 일본어에 능숙하지 못한 것은 야구 연습에 전념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 시간을 줄이고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주니치 감독 시절에 원정 당시 한 선수가 야간 통행 금지를 어기고 돌아온 것을 발견했다([[곤도 다다유키]]의 《프로 야구 감독 열전》에는 패전 투수가 되었던 선수에게 했던 말로 나와 있는데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음). 요나미네는 “오늘 밤은 자지 말고 반성해라!”라고 꾸짖어야 하는 것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고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을 수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말하지 못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버린 적이 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왜 감독이 인사를 간 것일까”라고 의아해 했다([[마쓰모토 유키쓰라]]의 후일담). 그러나 본인은 아무런 대책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주위의주위 사람들에게 신문을 읽고 전해달라고 하며 스포츠 신문 기자들의 생각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야구에 대한 자세는 확고했지만 일상에서는 매우 느긋했으며 가정에서는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야자와 겐이치]]는 요나미네의 감독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며떠올리며 이렇게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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