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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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방문한 [[서양]]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헨드리크 하멜]]은 동인도 회사에 고용되어 일한 [[선원]]이었다.
 
== 역사동인도 회사 설립 ==
=== 동인도 회사 설립 ===
[[파일:VOC amsterdam building.JPG|left|thumb|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본부]]
네덜란드 상인은 동인도 물산을 [[리스본]]에서 [[발트해]] 상품과의 교환으로 획득하고 있었는데, [[에스파냐]]의 압력으로 물러나게 되자, 동인도와의 직접무역의 기운이 높아져 먼저 [[1594년]] [[암스테르담]]에 원국(遠國)회사가 설립되었으며, 그 후 동종의 회사 설립과 합병과정을 거쳐 [[1600년]] 암스테르담에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고, 연달아 [[홀란트]] 등에 약 10개의 동인도 기업회사가 난립했다. 이 때문에 각 [[기업]]간의 불이익이 초래되었고, [[에스파냐]]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통합이 필요하게 되어 의회의 요구에 따라 동인도 무역의 여러 회사는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통합되었다.
=== 동양무역의 번성 ===
[[파일:Voc.jpg|right|thumb|250px|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조선소 (1750)]]
[[16세기]]에는 향료무역을 경영한 [[포르투갈]]인이 [[몰루카 제도]]를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16세기 말 네덜란드 상인이 [[자와 섬]]의 [[반탐]]에 상관(商館)을 열고 개척의 기초를 이룩했다. [[1600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자 이에 자극받은 네덜란드 정부는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동양무역의 독점권을 주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바타비아]](자카르타)에 총독정청(總督政廳)을 두어 [[포르투갈]], [[영국]] 세력을 쫓아내고, [[17세기]]에는 동양무역에 우월적 지위를 확립하여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회사로 성장하였다.
점령지역에서는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여 많은 수탈을 행했다. [[자와]]([[자와 섬|자바]])의 토후(土侯)를 지배하고,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을 값싼 월급으로 고용했으며,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남방의 [[향료]], [[커피]], [[쪽]](藍), [[설탕]]의 획득에는 원주민의 [[봉건]]적인 공납(貢納)이나 약탈이라고 보는게 정확할 매상(買上)을 강요하였고, 가장 중요한 [[정향]](丁香), [[육두구]](肉荳蔲)는 생산지를 한정시켜 노예재배제(奴隸栽培制)를 실시하였다.
 
=== 쇠퇴 ===
[[파일:European settlements in India 1501-1739.png|thumb|right|200px|인도의 네덜란드 및 기타 유럽인들의 정착지]]
회사의 번영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세계적 지위의 상징이었으나, [[17세기]] 후반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대립에서 점차 [[인도]]를 거점으로 하는 [[영국]] 세력에게 압도(壓倒)되어 [[1799년]] 동인도회사는 해산, 네덜란드 정부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 때, 자와는 영국에게 점령되어 [[래플즈]]에 의해 식민정책(植民政策)의 대개혁이 단행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후 다시 네덜란드의 통치가 시작되어 강제재배제(强制栽培制)가 시행되었다. 즉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네덜란드의 번영과 경제적인 회복을 위해 희생된 것이다. [[뉴기니]], [[발리 섬|발리]], [[보르네오]], [[수마트라]] 등이 네덜란드의 직접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 말부터 원주민의 자각이 높아져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가, 전후 원주민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 참고 자료 ==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 외부 링크 ==
{{Commons|Category:Dutch East India Company}}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분류:1602년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