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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말 인물 [[금위]], [[금선]]은 [[김일제]] 후손이라고 전한다. 여남 김씨 족보에는 동위 문무관 '''김응''' 이라는 인물이 있으나, 중국 기록에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청나라]] 멸망 후 왕족이 만주 성씨 애신각라(愛新覺羅, 아이신교로<ref>최근 KBS에서 푸이의 성을 '''아이신줘러'''라고도 했다.</ref>)에서 아이신이 금을 뜻하여 한식 성씨 김(金, 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755년, [[동위]] 관리 김응 후손 김충(金忠)은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 오다가 경북 영덕에 표착하였다. 신라 [[경덕왕]]은 김충(金忠)에게 '''남민'''(南敏)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남민'''(南敏)은 신라 여성과 결혼하고 영양으로 이거하여 [[영양 남씨]]를 창본하였다.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영양에 옮겨 정착하여 [[영양 김씨]] 창본하였다. 이후 세보가 소실되어 영양 김씨는 '''김충황'''(金忠晃)을 1세조로 하였다. 다른 문헌에 영양 김씨의 시조는 고려조에 전서를 지낸 '''김윤철'''(金允轍)이다.
 
한편 오래 전, 중국 태고 때 인물인 소호금천씨 역시 김(金)씨였다. 중국 한족(漢族) 김씨들의 상당 수는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모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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