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윌리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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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
|경력 = <nowiki></nowiki>
'''선수'''<br />* [[보스턴 레드삭스]] (1939년-1942년, 1946년-1960년)<br />'''감독'''<br />* [[텍사스 레인저스|워싱턴 세너터스 / 텍사스 레인저스]] (1969년-1972년)
|선출국 = 미국
|선출년 =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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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A's(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의 경기에서 4타수 1안타로 타율이 .399로 추락하여 한때 4할의 꿈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를 기록, .406까지 상승함으로써 1941년 4할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MVP까지 점쳐졌지만, 56경기 연속안타의 행진을 벌인 [[조 디마지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려야 했고, 윌리엄스 자신도 디마지오의 수상이 당연한 것이라는 겸손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사적인 디마지오와 달리 윌리엄스는 야구자체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각종 상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기자들과 그다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 MVP수상에 많은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기자들과의 불편한 관계는 그의 야구인생 전반에 이어졌고, 1942년 타율.356, 홈런36, 137타점으로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음에도 양키스의 조 고든에게 다시 MVP수상의 영광을 빼앗기고 말았다. 시즌 중반 해군에 입영신청을 함으로써,(Williams served as a United States Marine Corps pilot during World War II and the Korean War)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 3년간의 공백을 가지게 된 윌리엄스는 1946년이 되어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타율.342와 38홈런, 123타점으로 군복무한 기간동안 5할이하의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키켰으며, 정규시즌 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애타게 기다려왔던 MVP를 차지하긴 했지만, 시즌 후반기에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자신의 야구인생중 유일했던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1타점에 그치며 시즌을 복귀후 첫 시즌을 아쉽게 마감해야만 했다.
 
1946년 클리블랜드의 신예감독 루 부드로가 "Williams Shift(윌리엄스 쉬프트)"를 고안할 정도로 당겨치는 타격을 계속적으로 했음에도 그는 웬만한 슬럼프없이 매시즌을 완벽히 소화하며 1947년 타율.343, 32홈런, 114타점으로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 MVP수상이 유력해 보였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디마지오에게 다시 MVP를 빼앗기고 말았다. 46년 리그 우승이후 조 메카시와 같은 당시 최고의 명장을 영입하고도 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지며 팀은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하였지만, 윌리엄스의 타격은 팀성적과 달리 지칠줄 몰랐고, 49년 생애 최다인 159타점과 43홈런과 그해 타격왕을 거머쥔 조지 켈에 0.002차이로 뒤지는 타율.343의 성적을 올리며 두 번째 MVP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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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1918|2002|윌리엄스, 테드}}
{{Authority control}}
 
[[분류: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