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당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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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자코뱅당]]에 가입하여 혁명 재판소를 설치하고 왕당파를 처형하였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와 뜻이 맞지 않는 일이 잦았고 결국 [[1794년]]에 전세가 호전되기 시작하자 3월부터 시작된 혁명 세력내의 좌, 우파에 대한 탄압중에 "외국인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고 반혁명 세력을 도와 준 혐의"로 혁명 재판을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 생애 ==
[[1759년]], [[프랑스 왕국]]의 [[샴페인]] [[아루시 쉬르 오브]]에서 태어났다. [[1780년]]에 [[파리]]로 나와 법을 배우고 변호사가 되어, 결혼하여 1787년 왕실 고문회의의 변호사가 된다. 몬테스큐와 디드로의 저서를 애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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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말 귀국 후 [[파리 코뮌]]의 제2 조역에 선정됐다. [[1792년]], 민중을 선동하여 왕궁을 습격한 후([[8월 10일 사건]]), 급진파 중 유일하게 [[지롱드 파]] 내각 사법 장관으로 기용 된다.
 
[[Image파일:DantonSpeaking.jpg|thumb|upright|당통의 의회 연설]]
당시 대외 전쟁에서는 연이어 패전하였고, [[9월 2일]] [[베르덩]]에서 프랑스군이 항복하였다. 주변이 동요하자 "용기가 항상, 용기가 더욱, 용기가 필요하다"로 알려진 유명한 연설을 통해 국민을 고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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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
 
== 바깥 링크 ==
{{commons|Georges Danton}}
* [http://www.royet.org/nea1789-1794/archives/journal_tribunaux/tr_proces_dantonistes.htm Lire le compte rendu du procès de Danton et des Dantonistes devant le Tribunal révolutionnaire dans le « Journal des Procès »]
 
{{토막글|정치인}}
{{Authority control}}
 
[[분류:1759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