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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시민 논쟁: "지금에 이르러 다수의 사람들이 당시 허지웅의 비판에 대해 동의를 표하지만" 근거가 제시 되지 않은 개인 의견.
(→‎깨시민 논쟁: "지금에 이르러 다수의 사람들이 당시 허지웅의 비판에 대해 동의를 표하지만" 근거가 제시 되지 않은 개인 의견.)
 
===깨시민 논쟁===
소위 "깨어있는 시민"으로 총칭되는 노무현 팬덤에 대해 "깨시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러한 표현이 그 집단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수꼴이나 좌빨과는 달리, 깨시민은 단지 '깨어있는 시민들'을 축약한 가치중립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이 표현은 문성근 등의 세력이 먼저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영화 [[26년]]의 부족한 함량을 지적했다가 큰 비판에 직면했다. 지금에 이르러 다수의 사람들이 당시 허지웅의 비판에 대해 동의를 표하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전두환을 비판하는 영화를 욕할 수 있느냐"는 이유로 허지웅을 비난하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그는 18대 대선 전후로 깨시민들의 패악에 대해 지적했다. 대선 이후 그는 "각 진영이 가능한 지지자의 총량을 동원했으나 깨시민 그룹이 아직 표심을 결정하지 못한 중간층의 피로도를 야기함으로써 대선 패배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ref> [http://ozzyz.egloos.com/4764885 "깨시민의 탄생"], ozzyz review. </ref> 이후 [[나꼼수]]와 [[종편]], [[남영동1985]], [[26]]년에 이르는 논쟁에 있어 폭력적인 상황에 처했다.
 
===곽노현 교육감 조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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