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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1895년]] [[을미사변]]으로 조선 국민의 대일 감정이 극도로 악화하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전국이 소란해지자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공사관 보호라는 명목으로 수병(水兵) 백명을 서울로 데려왔다. 이에 친러파인 [[이범진]] 등은 [[베베르]]와 공모하여 건양 1년([[1896년]]) 2월 11일에 국왕의 거처를 궁궐로부터 [[정동 (서울)|정동]](貞洞)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ref name="글로벌_1">'아관파천',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옮긴 당일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1842년)|김홍집]]을 비롯하여, [[김윤식 (1835년)|김윤식]], [[유길준]], [[어윤중]], [[조희연]], [[장박]], [[정병하]], [[김종한 (1844년)|김종한]], [[허진 (1853년)|허진]], [[이범래 (1868년)|이범래]], [[이진호 (1867년)|이진호]]를 면직하고, 유길준 등을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이어 [[김병시]]를 내각총리대신에 명하는 등 내각 인사를 새로 하였다. 이어 [[1895년]] [[8월 22일]]에 [[명성황후|왕후 민씨]]를 폐한다고 내린 조칙 등을 위조된 것으로 명하여 취소케 하였다. 이날 김홍집과 [[정병하]]가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ref>《고종실록》 권34 고종 33년 2월 11일조.</ref>. 어윤중 또한 살해되었고, 유길준·조희연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러내각이 조직되었다.<ref name="글로벌_1"/>
 
그러나 러시아 제국은 [[1896년]] 5월 [[니콜라이 2세]]의 황제 대관식 이후에 일본 제국과 가까워지며, 로마노프-야마가타 협정을 맺는다. 또한 러시아 제국은 경원과 경성의 채굴권과 [[압록강]], [[두만강]] 및 [[울릉도]]의 채벌권과 같은 각종 이권을 요구하였다. 이에 [[1897년]] [[2월 18일]], 궁으로 돌아갈 것을 명한 고종은 이틀 뒤인 [[2월 20일]]에 [[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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