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우드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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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더 왕조 시절 ===
[[1485년]] [[영국]]에 상륙하는 데 성공한 [[헨리 7세|헨리 튜더]]는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전사시켰고, [[헨리 7세]]로 즉위하여 [[튜더 왕가]]를 열었다. 이 때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의 혼인 무효는 취소되었고,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헨리 7세와 결혼하면서 엘리자베스 우드빌 역시 전 왕비의 칭호와 연금을 되찾았다. 그러나 [[1487년]] [[2월 12일]]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버몬지 사원으로 은퇴하였고, 5년 뒤인 [[1492년]] [[6월 8일]] 사망하였다. 사망 전까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손녀인 [[마거릿 튜더]]와 [[헨리 8세]]의 탄생 당시 궁정을 방문하는 등 왕실의 공식 행사에 참여했으나 기본적으로 사적인 삶을 영위하였고, 아주 간략한 장례식을 치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일화 및 이설 ==
*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대단한 미녀로, 당대에 이미 '브리튼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용과 같은 진한 쌍꺼풀을 지닌 여인(heavy-lidded eyes like those of a dragon)'<ref>Jane Bingham, The Cotswolds: A Cultural History, Oxford University Press, 2009</ref>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 일설에 의하면 [[에드워드 4세]] 역시 처음에는 두 사람의 신분 차이를 의식하여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아내가 아닌 정부(情婦)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ref>근대 이전의 유럽 귀족 사회에서 국왕의 정부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지탄받았지만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대단한 특혜를 얻을 수 있는 지위에 오르는 것을 의미했다.</ref> 그러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저는 왕비가 되기에는 신분이 모자라지만, 정부가 되기에는 신분이 높습니다.''라고 말하여 [[에드워드 4세]]를 사로잡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 자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