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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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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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 ==
하공진은 평소 저자거리에서 준마(駿馬)를 많이 사 고려로 가는 길에 배치하여 두고, 귀국을 꾀하다가 탄로가 나 [[요 성종]]의 국문(鞠問)을 받게 되었다. [[1011년]] 현종 2년 거란왕은 온갖 악형과 회유로 신하가 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모욕스러운 말로 응대하며 거란왕을 크게 격분시켜, 사형을참형에 당하고처해지고 간을간은 꺼내져 씹히기까지 하였다.<ref>{{웹 인용 |url = http://people.aks.ac.kr/view.jsp?id=PPL_5COa_A9999_1_0014080 |제목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하공진(河拱辰) |확인일자 = 2008-12-15 |저자 =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자 =
|출판사 = |인용 =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