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재 (극작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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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임희재}}
'''임희재'''(任熙宰, [[1919년]] ~ [[1971년]])는 [[일제강점기대한민국]] 극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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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재'''(任熙宰, [[1919년]] ~ [[1971년]])는 [[일제강점기]] 극작가이다.
 
==개요==
임희재는 일제강점기1919년 고등학교을[[금산군]] 졸업[[남이면]] 후,출생이다.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진학하였다중퇴하였다.
광복 직후 [[해주시]]에서 아마추어 극단 활동도 하였지만 분단 이후 월남하여 중등교 교사와 신문사 기자로 일하였다. 1954년도에 단막희곡 「기류지(寄留地)」로 등단하였다. 그 뒤 「복날」·「무허가 하숙집」·「고래」 등의 단막극과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라는 장막희곡을 썼다. 1970년대 TV 드라마 '[[아씨]]'의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대중적인 시나리오 작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다양한 희곡과 시나리오 집필로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충청남도]] [[금산군]]은 '금산을 빛낸 인물' 3인을 선정하고 그의 흉상을 제작하였다.
임희재는 일제강점기 고등학교을 졸업 후,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진학하였다.
 
중퇴하고 한국에 돌아와 인쇄소에서 일하였다.
 
임희재는 남북 분단이 이루어 지자 월남하였다.
 
임희재는 6·25사변이 끝나고 여러 소설을 썼다.
 
==작품==
 
*기류지(寄留地)
*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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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19년 태어남]]
[[분류:1971년 죽음]]
[[분류:금산군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