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교향악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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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의 후임으로는 독일 출신의 [[프레데릭 스톡]]이 임명되었고, 스톡도 1942년에 타계할 때까지 재임하면서 [[스트라빈스키]]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프로코피에프]] 등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과감하게 레퍼토리에 추가시키는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 스톡 재임기였던 1913년에는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되었으며, 3년 뒤에는 역시 스톡의 지휘로 첫 녹음을 취입했다. 스톡 사후에는 데지레 드포와 [[아르투르 로진스키]], [[라파엘 쿠벨릭]]이 차례로 직위를 이어받았으나, 청중 동원력 부재와 가혹한 리허설 방식, 평단과 악단 운영진의 압박 등으로 모두 단기 역임에 그쳤다. 로진스키 후임으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영입하려는 시도도 진행되었으나, 나치스를 피해 미국에 망명한 음악인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1953년에는 쿠벨릭의 후임으로 [[프리츠 라이너]]가 상임 지휘자에 취임했고, 라이너는 특유의 엄격한 훈련으로 악단의 합주력을 개선하면서 RCA에 본격적인 레코드 녹음을 시작했다. 라이너가 심장병으로 물러난 후에는 프랑스 출신의 [[장 마르티농]]이 자리를 이어받았으나, 단원들과의 불화로 인해 1968년 사임했다. 1969년에는 상임 지휘자와 수석 객원 지휘자로 각각 [[조지 솔티숄티]]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맞아들여 새로운 변혁을 꾀했다.
 
솔티는 1991년까지 재임하면서 [[베토벤]]과 [[브람스]], [[말러]]의 교향곡 전곡 녹음을 비롯한 많은 음반을 데카에 취입했으며, 악단의 합주력과 표현력을 창단 이래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금관악기 파트의 실력은 미국 제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솔티 이후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자리를 이어받아 2006년까지 재임했다. 2008년 현재 수석 지휘자로 [[베르나르드 하이팅크]]가, 명예 지휘자로 [[피에르 불레즈]]가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 감독이나 상임 지휘자 자리는 공석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