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6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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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6세는 또한 대화와 뇌물을 동원하여 [[베네벤토 공작]]이자 [[롬바르드족]]인 [[기술프 1세 (베네벤토)|기술프]]에게 동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철수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일부 문헌에 의하면, 기술프가 군대를 이끌고 캄파니아 교외지역을 파괴한 다음에 로마의 성벽 앞에 야영지를 건설하였는데, 요한 6세에 의해 스스로 퇴각하였다고 한다.<ref name="e248">Ekonomou, 2007, p. 248.</ref>
 
요한 6세 재위기간 중에 일어난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바로 롬바르드족의 왕인 [[아이페르트 2세]]가 본래 교회의 영토였던 [[코티엔느 산맥]]을 반환한 일이었다.<ref name="e248"/> 그리고 성 안드레아 대성당에는 새 독경대를 설치하고 [[성 마르코 성당 (로마)|성 마르코 성당]]의 제대에는 새 [[제대포]]를 만들어 씌우고, [[산 파올로 성당 (로마)|산 파올로 성당]]의 제대 양쪽 옆에 있는 기둥 사이에 얇은 천을 덮는 등의 굵직한 사업들이 진행되었다.<ref name="e248"/> 교회 행정 면에서 요한 6세는 보니파시오를 교황의 고문으로 임명하는 등 동방 출신들을 대거 로마 교회에 영입하였다.<ref name="e248e245"/>
 
704년 [[요크의 윌프리드]] 주교가 70세가 되던 해에 주교직에서 쫓겨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그는 로마로 가서 요한 6세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탄원하였다.<ref name="e245">Ekonomou, 2007, p. 245.</ref> 윌프리드는 654년과 679년에 로마를 방문하였으며, 당시 로마 교회 조직이 그리스인들로 점진적으로 채워져가는 변화를 목격하였다. 윌프리드 주교의 탄원에 요한 6세는 그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시노드를 소집했는데, 당시 시노드가 그리스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윌프리드 주교는 언어적 문제로 힘들어했다.<ref name="e2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노드에서 진정성을 인정받은 윌프리드는 709년 선종하기 전에 자신의 주교좌로 돌아가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으며, 이 때 교황의 지시를 전하기 위해 [[머시아의 애설레드]] 국왕에게 교황의 친서를 가지고 잉글랜드로 갔다.<ref name="newadvent.org"/><ref name="e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