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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월]] 귀국 이후 [[1907년]]까지 국내활동 시기의 일기에는 국내 정치 사회 분위기와 갑오경장, 을미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의 전후 사정과 당시 부패하고 경직된 관리들의 태도, [[명성황후]] 암살 사건 전후의 정치상황,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수행원 참석관계의 여행과정 및 [[독립신문]] 편집 참여와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의 인권운동, 국권·민권운동의 전말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895년]] 일기에는 주로 국내 관료들의 무능함과 부패함, 표리부동한 처신과 행동 등이 담겨져 있고, 언문을 사용할 것을 상주하자 나는 언문을 배우지 못했다는 [[김홍집]]외 일부 고관들의 반발, 개화파와 민권운동에 대한 모함을 하는 일부 관료들에 대한 의견이 담겨 있다. [[1896년]] 이후의 일기에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무고하는 [[황국협회]] 및 [[조병식]] 을 비롯한 정부 대신들에 대한 비판, [[조선 고종|고종]]에 대한 경멸과 황실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과 의심을 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을미사변]] 당시의 일기와 이후의 일기에서 왕비 암살에 [[유길준]]을 비롯한 조선인 협력자들이 가담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1900년대의 일기에는 지방관리의 부패상과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선교사들의 월권행위와 권력남용, 철도부설권의 해외 매각 문제, 민중의 동태와 무기력, 위생관념 결여, 그리고 러일전쟁의 경과와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과 당시 고위층의 움직임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부터 [[1915년]] 사이의 일기는 실전되었는데, [[윤치호]]가 [[105인 사건]]으로 [[조선총독부]] 경찰에 끌려갔을 때 압수당하여 돌려받지 못했다.
 
[[1916년]]에서 [[1943년]]까지 [[일제 강점기]] 당시의 일기에는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차별 정책과 세금 인상, 구한국 화폐 이용 금지, 3·1 만세 운동과 일부 민족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 [[1920년]]대 총독 교체 이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는 과정,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진주만 공습 당시 자신의 입장과 국내외 지식인의 동향, 독립운동가 및 반체제인사들의 활동사항, [[조선총독부]]의 대응, [[조선총독부]]의 역차별과 총독부 관리들의 실적 올리기식 정책 등과 한국인의 어려운 생활상, 해외에 망명한 한국인 교포들에 대한 일본 헌병, 중국 마적, 한국인 독립운동가, 공산당 빨치산 등에 의한 이중삼중의 약탈, 그가 [[1920년]]대부터 맡던 각종 기독교단체 및 기독교 단체 사람들의 관계와 활동사항, 특히 YMCA 청년회 서울지부 및 YMCA중앙기독교청년회 본부 일과 기타 교육사업·사회사업 문제, 그밖에 [[적극신앙단]] 사건 등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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