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 정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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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철에는 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염병 발생의 우려가 있는 것 (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의 4불가론을 거부하고 출병을 강행하였다명령하였다. [[1388년]] 음력 4월 18일, [[고려]]는 전국에서 좌우군 3만 8830명, 수송대 1만 1634명, 말 2만 1682필을 동원해 요동 정벌에
나섰고, 우왕이 직접 [[평양]]까지 나가 격려하였다. 그러나, 총사령관인 팔도도통사 [[최영]]은 국내에서의 역모를 걱정한 우왕의 고집으로 전선에 나서지 않고 평양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