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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당의 형성 ===
{{본문|동서 분당}}
최초의 붕당 대립 구도의 성립은 [[1575년]]([[조선 선조|선조]] 8년)으로 [[이조전랑]]직 임명 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심의겸]]을 추종하는 기성 사림인 서인과 [[김효원(성암)|김효원]]을 영수로 하는 신진 사림인 동인의 결집에서 비롯되었다. 심의겸이 서울 서쪽에, 김효원이 동쪽에 살았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ref> 한영우, 352쪽. </ref>. 서인과 동인의 분당은 문반 관료의 인사권을 쥔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싸고 심의겸의 아우([[심충겸]])와 김효원이 서로 다툰 데서 비롯되었다. 이조 전랑은 5품·6품의 낮은 자리이지만, 삼사(三司)의 하나인 홍문관(옥당) 출신의 엘리트 관료가 임명되는 것이 관례로서, 삼사(三司)의 공론(公論)을 수렴하여 대신들을 견제하고, 또 물러날 때에는 후임자를 스스로 천거할 뿐 아니라, 이 자리를 거치면 재상으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요직이었다. 따라서 전랑의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권력 경쟁의 핵심 과제였다.
 
 
=== 동인 대 서인 ===
{{본문|동인 (정치)|서인 (정치)}}
선조가 즉위하면서 [[훈구파]]의 탄압을 이겨 내고, [[사림파]]가 정치 주도 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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