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유묵: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번째 줄:
 
== 유묵 목록 ==
조선 침략을 획책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사살한 직후의 안 의사 사진을 담은 엽서가 공개됐다. 무명지를 단지한 왼손을 앞으로 내민 모습이다. 사진 아래에는 ‘이토 공을 암살한 안중근. 한국인은 고래로 암살의 맹약을 할 때 무명지를 절단하는 구관(옛 풍습)이 있다’는 글이 일본어로 적혀 있다.
 
이 엽서가 발행 직후 날개 돋친 듯 팔리자 안 의사를 영웅시하는 풍조가 번질까 봐 두려워한 일제가 인쇄를 중단했다고 한다.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라는 대의 속에 대담하게 거사하고, 당당히 잡힌 안 의사를 추앙하는 분위기가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은 물론 심지어 일본인 사이에서도 퍼졌다는 증거라고 했다. 옥중의 안 의사는 57점이 넘는 붓글씨를 남겼다. 이처럼 40년 이상 관련 사업을 해온 경험상 사형수가 옥중에서 당당히 붓글씨를 써서 나눠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존경심 말고는 달리 찾을 수 없다는 평가다.
 
=== 백인당중유태화 ===
{{유형문화재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