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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군'''(昌城郡)은 [[평안북도]] 북부 지역의 [[압록강]] 중류에 있는 [[군 (행정 구역)|군]]이다. 창성군은 [[김일성]] 일가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알려져있다.<ref name="chang">윤일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314820 북한 김정은이 평북 산골 창성군을 찾은 이유], 연합뉴스, 2013년 6월 14일</ref><ref>김용훈,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100&num=93523 김정은 生母 '재일교포' 고영희 우상화로 골머리], 데일리NK, 2011년 12월 23일</ref>
 
== 위치 및 지형 ==
 
경작지는 전체 군 면적의 6.1%에 불과하다. [[옥수수]], [[쌀]], [[땅콩]], [[고추]],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으며, 잠업이 널리 행해진다. [[양]]을 많이 기르고, 목재 벌채와 산업과 약초 재배를 비롯해 [[금]], [[텅스텐]], [[석탄]] 광업도 주요 산업 중 하나이다.
 
[[김일성]]이 지방공업 발전의 본보기로 내세운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김일성]]은 1962년 8월 창성에서 열린 지방 당·경제일꾼 연석회의에서 '군의 역할을 강화하며 지방공업과 농촌경리를 더욱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훨씬 높이자'라는 연설을 했고 이 연설은 북한에서 지방공업 발전을 위한 경전처럼 여겨진다.<ref name="chang"/>
 
== 역사 ==
 
1952년의 행정구역 재편에 의해, 옛 창성군의 창성면· 신창면으로 구성된 창성군(1읍 18리)이 재편성되었다. 현재는 1읍 1로동자구 15리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6월 14일에 [[김정은]]이 창성혁명사적관을 둘러보며 "대원수님들의 혁명 사적이 가장 많이 어려 있는 창성군을 인민의 낙원으로 더 잘 꾸려 창성땅에서 '사회주의 만세' 소리가 더 높이 울리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김형직]]이 1920년대 초 일제 감옥에서 출옥 후 평북 창성, 의주, 삭주 등 일대에서 반일 결사체 '조선국민회' 지하조직을 복구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또, 1950년대 말 6·25전쟁 당시 북상하는 유엔군에 밀려 평안북도의 깊은 산골로 후퇴했던 김일성이 그해 10월께 창성군 창골 지역의 농가에 한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다. 뒤이어,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은 108차례, [[김정일]]은 60차례나 창성군을 방문했다고 밝혔다.<ref name="chang"/>
 
== 교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