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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년]] 9월에는 발해에도 사자를 파견하고 동향을 보고 있었고, [[선왕]] [[대인수]]가 즉위하고 긴장이 되자, 후에 [[826년]] 7월 한산주 이북의 주 군으로부터 1만 명을 징병 하여 대동강가에 300리 장성를 쌓고, 발해의 남하를 막는 준비를 하였다.
 
한편, [[김헌창]](金憲昌)이 [[822년]] 3월에 반란을 일으켜, [[웅진]](熊津)을 수도로 하고 [[장안국]](長安國)이라고 하였고, 그 지배 영역은 무진주, 청주, 웅천주, 완산주, 사벌주 등 5주 및 국원, 서원, 금관 3소경 등 구 [[백제]]의 영역을 중심으로 국토의 대부분이 [[김헌창]]을 지지하여, 왕권에 대항하는 자세를 보이게 되었다. [[김헌창]]의 반란은 1개월 정도로 진압되었지만, 난의 진압에 활약한 토벌군은 귀족의 사병과 화랑 집단이며, 율령 체제 아래에서의 병제는 유명 무실화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825년]] 1월에는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金梵文)이 [[고달산]](高達山, 지금의 경기도 여주군여주시)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 반란은 북한산주 도독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826년]] 10월에 사망하여, 그 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의 사적 제 29호가 비정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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