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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A young American lieutenant, his leg burned by an exploding Viet Cong white phosphorus booby trap, is treated by a medic - NARA - 541863.tif|left|thumb|60년대 미국의 외상 환자들은 전쟁터보다 못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부비트랩에 부상당한 군인이 의무병의 처치를 받고 있다. 베트남.1966).]]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문 진료과목으로서의 응급의학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응급의료란 전문 분야나 경력 유무에 상관 없이 의료진이 돌아가며 당직 근무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ref name="review"/>.
 
현대 응급의학의 역사는 [[영국]] [[캐나다]] [[호주]] [[미국]] 등이 응급의학을 전문 분야로서 도입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시작한다. 50년대 후반부터 밝혀진 구조 호흡, 가슴 압박 등의 [[심폐소생술]] 원리는 6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되었으며 전문 분야로서의 응급의학 탄생에 단초가 되었다<ref name="review">Robert E. Suter, Emergency medicine in the United States: a systemic review, World J Emerg Med 2012;3(1):5-10. http://www.wjem.org/upload/admin/201203/96ac491c02b55bef396335e9d126b0c5.pdf</ref>.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문 진료과목으로서의 응급의학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응급의료란 전문 분야나 경력 유무에 상관 없이 의료진이 돌아가며 당직 근무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ref name="review"/>.
한편, 1966년 [[미국]]에서 발행된 보고서 "백서: 사고로 인한 죽음과 장애, 현대 사회의 외면당한 질병<ref>White Paper: Accidental Death and Disability, the Neglected Disease of Modern Society. http://www.nap.edu/openbook.php?record_id=9978</ref>"은 당시 미국의 응급의료가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있는지 보여주었다. 특히 [[외상]]을 입어 생명이 위중한 [[응급환자]]들이 전쟁터의 병사들보다도 못한 수준의 응급의료를 제공 받고 있었음을 당시 벌어진 [[월남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이런 충격적인 인식의 확대는 전문 분야로서의 응급의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고 1968년 미국 응급의학회(American College of Emergency Physicians)가 출범하기에 이른다<ref name="review"/>.
 
한편, 1966년 [[미국]]에서 발행된 보고서 "백서: 사고로 인한 죽음과 장애, 현대 사회의 외면당한 질병<ref>White Paper: Accidental Death and Disability, the Neglected Disease of Modern Society. http://www.nap.edu/openbook.php?record_id=9978</ref>"은 당시 미국의 응급의료가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있는지 보여주었다. 특히 [[외상]]을 입어 생명이 위중한 [[응급환자]]들이 전쟁터의 병사들보다도 못한 수준의 응급의료를 제공 받고 있었음을 당시 벌어진 [[월남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이런 충격적인 인식의 확대는 전문 분야로서의 응급의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고 1968년 미국 응급의학회(American College of Emergency Physicians)가 출범하기에 이른다<ref name="review"/>.
 
[[File:Emergency department gangnam severance.jpg|thumb|강남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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