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체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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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목포 아시아나 추락 사고로 알려져 있는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에서는 헬기로 생존자를 구조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는데, 척추 부상을 입은 승객이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헬기에 매달려 구조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당시 구조 방식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ref>93 그사건 그 사람, 동아일보, 1993년 12월 9일, 30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ref>. 이는 당시 열악하고 비전문적인 응급의료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후로도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의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 등 대형사고를 겪으며 응급구조와 이송 체계 등이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있었다.
 
이런 인식이 확산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현장의 지휘체계로는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 의료진 등이 조직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고 경찰, 구급대, 민간구조대 등이 뒤엉켜 구조된 환자를 취재진 앞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나서기도 했다<ref>부실-비리 합작 안전불감'백화점'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취재기자 방담, 한겨레 신문, 1995년 7월 24일, 20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ref>. 한편 선진국에는 이미 일반화되어 있던 현장에서의 중증도 분류(triage)도 이뤄지지 않았다<ref name="disaster"/>.

또한 사고 초기, 현장 인근의 [[강남성모병원]]에는 200명사고 가까운발생 직후 30분간 180명의 환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이송되어 응급진료 한계를 순식간에 아비규환을초과해 이룬버린 반면, 사고 소식을 듣고 병상을 비워 놓고 있던 [[서울대병원]]에는 한명의 환자도 후송되지 않았다. 또한이로 선진국에서는인해 이미추후 일반화된[[강남성모병원]]으로 현장에서의이송한 위급한 환자들을 다시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하느라 결국 환자 중증도생명에 분류(triage)도직결될 이뤄지지 않았다있는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 사건을 두고 당시 대한외상학회 왕순주 총무는 "재난의료체계의 기본인 통신 체계, 현장처치 체계, 이송 체계에 총체적구멍이 허점을뚫려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 사건이다"라고 말했다<ref name="disaster">후송 응급 조치 총체적 허점, 경향신문, 1995년 7월 5일, 4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ref>.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응급의학]]이 전문 진료과목으로 인정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95년 [[응급구조사]]가 공식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하였고, 1996년 첫번째 [[응급의학과]] [[전문의]] 시험이 치러졌으며, 2000년 현재와 같은 [[응급의료기관]] 체계가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