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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장화 (서진)|장화]]는 진수의 뛰어난 안목과 탁월한 재능을 칭찬하고 황제에게 추천하려 했다. 그러나 장화의 정적이었던 [[순욱 (서진)|순욱]](荀勗) 등의 훼방으로 진수는 장광 태수로 전임됐다. 이후 진나라의 황제는 진수의 재능을 인정하고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에 임명했다. 이후 모친이 별세하자 진수는 관직을 버렸다. [[낙양]]에 시신을 묻으라는 모친의 유언을 따랐으나, 고향에 묻어야 한다는 예를 어겼다는 이유로 향당의 비난을 받았다.
 
진수는 삼국지 외에도 《고국지(古國志)》50편, 《익도기구전익부기구전(益耆舊傳)》, 《관사론(官司論)》, 《석휘(釋諱)》, 《광국론(廣國論)》, 《촉상제갈량집(蜀相諸葛亮集)》을 편찬해 [[중국]] 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진서]](晉書)》〈진수전〉에서 진수를 평하길, [[반고 (후한)|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을 이어 이전의 전(典)을 이을 자는 오직 진수 뿐이라고 호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