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청 철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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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은 [[치타]]를 출발해 만주 북부를 횡단,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철도 노선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는 [[청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요동 반도를 영유하는 것을 막은 대가로 [[청나라]]와 협상해 동청철도 부설권을 얻는다. [[1898년]] [[3월]] 러시아는 여순과 대련 일대를 조차 하고 [[하얼빈]]에서 [[대련]]에 이르는 [[남만주철도]]의 부설권도 얻었다. 하지만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고, 그에 따라 맺어진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장춘]] 이남의 남만주철도는 일본의 소유가 되었다. [[1918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자,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동청철도의 이권을 계승했다.
 
[[1924년]] [[5월]] [[중국중화민국]]과 [[소련]] 양국은 국교를 맺기 위해 수교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수교 협정에서 동청철도의 [[소련]] 소유가 인정되었다. 하지만 이 협정에 불만을 가진 [[장작림]] 군벌 정권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와정부와 따로별도로 [[1924년]] [[9월]] [[소련]]과 협정을 체결하였다. [[1929년]] [[장학량]]은 소련의 협정 위반을 이유로 동청철도 이권 회수를 시도했으나 소련군의 방해에 의해 실패하게 되었다.
 
[[1931년]] [[만주 사변]]이 발발하고, [[1932년]] 일본에 의해 괴뢰 정권인괴뢰국인 [[만주국]]이 성립하자 [[소련]]은 [[일본]]과의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동청 철도에 관한 권리를 만주국 정부에게 팔았다. 동청철도를 판 소련은 [[1935년]] [[3월]] 만주에서 철수하였다. 동청철도가 만주국의 국유 철도가 되자, 일본은 중국 대륙 침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광궤]]였던 궤도를 [[표준궤]]로 바꾸었다.
 
[[1945년]] [[8월]] [[소련]]은 [[8월의 폭풍 작전|일본에게 선전 포고를 하는 동시에 만주에 침공]]하면서 동청철도 및 [[남만주철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이 두 철도를 합해 명칭을 장춘 철도라고 개칭하였다. [[1945년]] [[8월]] [[소련]]은 [[중화민국]] [[장개석장제스]] 정권과 동맹 조약을 맺어 장춘철도를 소련과 중국이 30여년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1949년]] [[중국 공산당]] 정권이정권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고 [[장제스]]의 [[중화민국]] 국민정부가정부가 [[대만타이완]]으로 철수하자, 소련과 중공은 [[1949년]] 동맹 조약을 개정해 장춘 철도의 소유권을 [[중화인민공화국]]이 갖는다는 것을 합의함으로써 장춘철도의 모든 권리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 갔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만저우리~하얼빈 구간은 [[빈저우 철로]]로, 하얼빈~쑤이펀허 구간은 [[빈쑤이 철로]]로, 하얼빈~다롄 구간은 [[하다 철로]]([[:zh:哈大鐵路|zh]])로 분할되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