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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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시 피살자 명부'에서는 유유관순 열사의 순국 당시 주소는 천안군 동면 용두리, 순국 장소는 서대문형무소로 나온다. 순국 상황 난에는 "3·1독립 운동만세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 당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아우네 만세 운동 당일의 희생자도 기재되어 있는데, 유 열사 부친인 유중권 열사의 기록이 가장 먼저 나온다. 순국 경위는 "3·1운동 독립만세로 인하여 총살당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시는 기미년(己未年·1919년) 3월 1일, 장소는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이다. 이는 1987년에 작성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기록과 상당히 일치한다. 보훈처에 따르면 공훈록은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의 만세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 헌병들은 시위군중을 추격하며 발포하고 칼로 찔렀다고 전하고 있다.
 
유중권 열사의 바로 옆에 성명이 "李氏"라고 표기된 여성이 등장한다. 주소·순국장소·순국상황 난에 유중권 열사와 같다는 기호가 표기돼 있어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로 알려진 이소제 열사로 추정된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 열사와 어머니 "이씨(李氏)"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희생자 명부에서는 유중권 열사와 이씨를 포함해 20명이 같은 장소·날짜·상황에서 순국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이씨라는 인물을 일단 미확인자로 분류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6605921&isYeonhapFlash=Y "유관순 옥중서 打殺돼"..3·1운동 순국상황 드러나] 연합뉴스, 2013.11.1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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