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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에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유관순, 옥중에서 타살(打殺)"로 기재되어 있다. 국가기록원이 주일대사관에서 이관받아 [[11월 19일]]에 공개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와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에는 3·1운동 당시 애국 인사들의 순국 정황과 관동대학살 당시 참상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주일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발견된 이들 명부에는 3·1운동 피살자 중 630명과 관동대지진 피살자 중 290명에 관하여 인적사항과 사망 당시의 정황 등이 기재되어 있다.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에서는 유유관순유관순 열사의 순국 당시 주소는 천안군 동면 용두리, 순국 장소는 서대문형무소로 나온다. 순국 상황 난에는 "3·1독립 운동만세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 당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아우네 만세 운동 당일의 희생자도 기재되어 있는데, 유 열사 부친인 유중권 열사의 기록이 가장 먼저 나온다. 순국 경위는 "3·1운동 독립만세로 인하여 총살당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시는 기미년(己未年·1919년) 3월 1일, 장소는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이다. 이는 1987년에 작성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기록과 상당히 일치한다. 보훈처에 따르면 공훈록은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의 만세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 헌병들은 시위군중을 추격하며 발포하고 칼로 찔렀다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