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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柳寬順, 류관순, [[1902년]] [[12월 16일]]<ref>[[호적]]에 기재된 생년월일이다.</ref> ~ [[1920년]] [[9월 28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일제 강점기]]에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을 [[천안]]에서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1916년]] [[미국인]]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초등부 3학년에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3월 1일]]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후속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고, 경성복심법원에서[[조선총독부 재판소|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일제의 교도소 내 가혹행위로 인해 [[1920년]] [[9월 28일]]에 사망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1996년]]에 [[이화여자고등학교]]는 명예 졸업장을 추서하였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의 생가가 복원되어 [[1991년]]에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유관순 열사 유적]]과 천안종합운동장 내 '[[유관순체육관]]'<ref>현재 한국 남자 프로배구 구단인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홈 구장으로 쓰고 있다.</ref>은 유관순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해방 후 [[박인덕]] 등에 의해 기념사업이 추진되었는데, 일각에서는 일부 [[개신교]] 세력과 [[박인덕]] 등이 자신들의 친일 의혹을 덮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개신교계 학교인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를 부각시켰다는 의혹도 있다.
 
=== 투옥과 최후 ===
유관순은 천안경찰서 일본헌병대에 투옥되었다가 곧 공주경찰서 감옥으로 이감되었고, 공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의 1심재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 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유관순은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조선총독부 재판소|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후 상고를 포기하였다. 유관순은 경성복심법원 재판 당시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항의하면서, [[조선총독부]] 법률은 부당한 법이며 그에 따라 일본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함을 역설하였다.
 
유관순의 선고형에 대해서는 해방 직후 [[전영택]] 등이 징역 7년설을 거론했으나, 유관순기념관이 '병천·동면 지역 형사사건부'를 찾아내어 공주지방 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음이 확인되었다.<ref>[http://www.cheonan.go.kr/EgovPageLink.do?link=/yugwansun/sub/sub02/sub_06 옥중 투쟁]</ref> [[1920년]] [[4월 28일]]에 [[영친왕]]이 [[일본]] 왕족 [[이방자]]와 결혼하자 특사로 형이 1년6개월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서대문형무소]] 복역 중에도 옥안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구타를 당해 형기를 불과 1~2개월 남긴 [[1920년]] [[9월 28일]]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 논란과 의혹 ==
=== 형량에 대한 중언부언 ===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은 유관순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ref name="jungsun">[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226009012 유관순 열사 1심형량은 징역 5년] 서울신문 2007.02.26, 9면</ref> 당시 재판절차는 "지방법원-[[조선총독부 재판소|복심법원]]-고등법원의고등법원"의 3심제도로 운영되었으며, 유관순의 판결문은 징역 3년을 선고한 경성복심법원의 판결문만 남아 있어 1심 형량은 설왕설래했었다. 유관순과 1년 가까이 함께 복역한 어윤희는 '유관순 열사가 6년형을 받았다'고 말한 반면, [[조병옥]]의 동생 조병호는 '부친(조인원)이 유관순 열사와 함께 7년형을 받았다'고 회고하는 등 관련자들의 증언도 일치하지 않았다.<ref name="jungsun"/> [[2007년]] [[2월 26일]] 병천·동면계 형사사건부 발굴로 유관순의 1심 재판형량은 '징역 5년'임이 확인되었다.<ref name="jungsun"/>
 
=== 정치적, 종교적 목적의 악용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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