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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이름|푸슈카시}}
 
'''푸슈카시 페렌츠''' ({{llang|hu|Puskás Ferenc|푸슈카시 페렌츠}}), 본명: '''푸르첼드 페렌츠''' ({{llang|hu|Purczeld Ferenc}}, [[1927년]] [[4월 2일]] ~ [[2006년]] [[11월 17일]])는 [[헝가리]]의 [[축구]] 선수이다. 1950년대 ‘마법의 마자르 군단’이라고도 부른 무적의 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축구 역사상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최초의 국제적인 스타였다. 푸슈카시는 축구 선수 외에도 [[군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그가 군인이 된 것은 [[부다페스트 혼베드 FC|부다페스트 혼베드]]를 국방부에서 인수하였기 때문이며 이로 인하여 푸슈카시는 소령으로 임관했다. 이 때문에 푸슈카시는 '''질주하는 소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푸슈카시는 [[1927년]] 푸르첼드 페렌츠(Purczeld Ferenc)라는 이름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43년]] [[부다페스트 혼베드 FC|키슈페스트 AC]] (Kispest AC, 후에 [[부다페스트 혼베드 FC|부다페스트 혼베드]]) 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45년]] [[8월]]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그는, [[1952년]] [[헬싱키]]에서 열린 [[1952년 하계 올림픽|하계 올림픽]]에 헝가리 대표로 출전해 남자 축구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54년]] [[스위스]]에 열린 [[1954년 FIFA 월드컵|월드컵]]에서 헝가리의 준우승에 기여한 푸슈카시는, 이 대회 조별 리그에서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서독]]과의 경기 중 부상을 당해 결승 두 경기를 결장하게 되었고, 중심 선수를 잃은 헝가리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를 연거푸 꺾고 결승전에 올랐으나, 조별 리그에서 이미 경기한 바 있었던 서독에게 3-2로 역전패 당하는 바람에 매직 마자르 (당시 헝가리 대표팀의 별명) 의 불패 신화는 막을 내렸다.
이후 [[1956년]] [[헝가리]]에서 [[1956년 헝가리 혁명|헝가리 혁명]]이 일어나자 [[부다페스트 혼베드 FC|부다페스트 혼베드]] 팀의 선수로서 [[UEFA 챔피언스리그|유러피언컵]] 출전을 위해 [[스페인]]으로 출국한 푸슈카시는 헝가리로 귀국하지 않고 [[스페인]]으로 망명했으며 이 때문에 그는 헝가리 정부의 압력으로 2년간 공식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처분이 끝난 [[1958년]]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였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첫 황금 시대를 이룩하였다. 뒤에는 [[스페인]] 국적을 취득해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 대표로도 뛰었으며, 레알 마드리드 소속 시절에는 [[프리메라리가]] 우승 6회, [[UEFA 챔피언스리그|유러피언컵]] 3회 우승에 일조하였다. 개인적으로는 피치치 트로피 (Pichichi Trophy) 를 4번 수상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통산 372경기에서 324골을 넣었다. 그 밖에 [[유러피언컵 1959-60]] 결승전에서 4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는데,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결승전 개인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61년]]에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로 국제 무대에 복귀하였다. [[1962년 FIFA 월드컵]]에 스페인 대표로 출전하였으며,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통산 4경기에 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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