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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화급'''(宇文化及, [[583년]]경 ~ [[619년]])은 중국 [[수나라]]의 관리로, 무천(武川) 사람이다.<ref name="허106">허청웨이, 《중국을 말한다》 김동휘 역, 신원문화사, 2008, p.106, ISBN 9788935914487</ref> 고구려 원정군 사령관인 좌위솔 [[우문술]]의 장남이다.장남이자 [[우문지급]](宇文智及), [[우문혜급]](宇文惠及)의 형이며 [[우문사급]](宇文士及)의 이복형이다. [[양광|수 양제 양광]]의 총애를 받아, 양광의 근위장이 되었고, 얼마 안 되어 대복소경에 봉해졌다.
 
== 생애 ==
[[양광|수 양제 양광]]의 총애를 받아, 양광의 근위장이 되었고, 얼마 안 되어 대복소경에 봉해졌다.<ref name="허106"/> 수나라 말기인 [[618년]], 좌둔위장군에 봉해진 우문화급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으로 천하가 혼란한 것을 알고 둘째 동생 우문지급과 함께 [[수병변을 양제]]를일으켰다. 내실로양제는 끌고우문화급이 들어가반란을 그를일으킨 목졸라것을 시해하였다알고 도망가려 했으나 이내 우문화급의 무리에게 붙잡혔고 허리에 매고 있던 띠로 교살당하였다.<ref>박덕규, 《중국 역사 이야기 8》 일송북, 2005, p.82, ISBN 9788957320501</ref> 양제를 시해한 우문화급은 촉왕 양수를 황제로 추대하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양수를 비롯한 수나라 황족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는데 우문화급의 동생 우문지급과 친했던 양광의 조카 진왕(秦王) 양호(楊浩)만이 화를 피하고 살아남았다.<ref>샹관핑, 《중국사 열전 황제》 차효진, 달과소, 2008, p.436, ISBN 9788991223219</ref> 그리하여 우문화급은 양호를 황제로 추대하고 자신은 섭정으로써 모든 권력을 차지했다.
 
이후 황제 양호와 대신들, 자신의 측근 및 병사는 물론 수 양제의 보물들까지 이끌고 수나라의 옛 수도인 낙양으로[[낙양]]으로 향했다. 이때 낙양에서는 [[왕세충]]을 비롯한 여러 관리들이 [[양동]]을 황제로 옹립한 상태였다. 낙양의 관리들은 다른 반란세력 [[이밀]]에게 위공(魏公)의 자리를 주고 우문화급을 막게 했다.
 
우문화급은 이밀과 몇 차례 싸웠지만 우세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밀은 우문화급에게 화친을 제의하는 척 하면서 우문화급 진영의 군량이 완전히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우문화급은 이밀의 이러한 전략을 알아챈 뒤 이밀의 진영을 기습했고 거의 이밀을 죽일 뻔했으나 이밀의 부하 장수 [[진숙보]]의 보호로 이밀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밀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식량도 얻지 못한 채 북상한 우문화급은 자신이 세운 황제인황제 양호마저 죽인독살한 뒤, 황제를스스로를 참칭,황제라고 칭했다. 그는 국호를 '허'(許)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壽)라 하였다.
 
이듬해인 [[619년]] 봄, [[당나라]]를 세운 [[이연]]의 사촌 동생 [[이신통]]이 우문화급을 공격했다. 우문화급은 이신통에 패해 [[랴오청|요성]]으로 도망쳐 항전했다. 요성의 물자는 다 떨어져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우문화급은 이신통에 항복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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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문화급을 연기한 배우들 ==
* [[윤철형]] - ([[2006년]]~[[2007년]]) 《[[연개소문]]》 [[SBS]] 드라마
 
== 주석 ==
<references/>
 
[[분류:583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