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1번째 줄:
하지만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의 반대도 극심하였고 정난정의 후원자인 [[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 (조선)|보우]]는 제주도로 귀양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으나 윤원형의 적처였던 김씨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문정왕후]]가 죽자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는 정난정이 김씨를 독살했다며 [[의금부]]에 고발하였다. 이사건으로 점차 사대부의 공격이 심해지자 [[1565년]] [[11월 13일]] 몸에바다에 지니고 있던 독약을 먹고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사후 [[사림파]]에 의해 악녀의 대명사로 몰렸다. 조선의 사대부는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구전과 민담을 통해 작품과 희극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묘는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당하리 산 4-20번지(현 [[경기도]] [[파주시]] 당하동 산4-20번지) 선산 근처에 안장되었다.<ref>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61103140413945&p=segye</ref> [[윤원형]]과 본부인 연안 김씨가 매장된 묘소 뒤쪽에 매장되었으며 비석은 없이 전하다가 [[조선]]이 멸망한 뒤에 비석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