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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이 사망한 이틀 뒤, 이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프라이와 월터 선생은 형무소 당국에 유관순의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했다. 이에 이화학당의 외국인 교직원들이 유관순의 옥중사망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서대문형무소]]는 마지못해 월터 교장서리에게 시체를 인도하였다. [[1920년]]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 목사 주례로 장례식이 거행되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의 존재는 잊혀졌다. 유관순의 시신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의 군용기지로 전환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던 중 잃어버렸다.
 
[[1945년]] 광복 후 [[충청남도]]와 [[천안군]]의 협력으로 병천면에 유관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건립되었다. 한편 [[1946년]]부터는 이화여중 교장이었던 [[박인덕신봉조]], 신봉조[[박인덕]] 등 [[이화학당]] 출신 인사들에 의해 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다. 이 즈음, [[서대문형무소]]로부터 유관순의 인수한 이들이 석유상자 속에 든 유관순의 시체를 열어보니 토막으로 참살되었다는 소문 등이 퍼뜨려졌다. [[1962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단장(후일 건국훈장 국민장으로 개정)이 추서되었다. 시신을 잃어버려 [[1989년]] [[10월 12일]] 그의 고향 근처에 가묘인 초혼묘를 세웠다.
 
== 연보 ==
 
=== 유관순 신격화 배경 ===
[[1946년]] 이화여중 교장이었던 [[이화학당신봉조]] 출신의 [[박인덕이화학당]] 출신의 [[신봉조박인덕]] [[이화학당]]을 알릴 인물을 찾는다찾았다. 당시 이화학당의 후신인 [[이화여중]]의 교장으로 있던 신봉조가 동문 박인덕에게 ‘이화 출신 중에 국가와 민족에 공헌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요청하자 박인덕이 [[3·1 운동]] 때 순국한 유관순을 제안하면서 비로소 유관순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두 사람은 유관순을 널리 알리기로 하고 유관순 기념사업회를 구성한다구성하였다.<ref name="shinhwagh">[http://rki.kbs.co.kr/korean/program/program_historyinfo.htm?No=37627&current_page=4 3.1절을 보내며 류관순열사가 역사적으로 과대평가되었다는데..] </ref> 많은 항일 학생운동가들 중에서 유독 유관순이 선택된 배경에는 이들이 자신의 친일행위를 덮으려는 목적이었다는 의혹이 있다.
 
신봉조는 이화이화여중 출신으로교장을 일제 말기에 전형적인 친일파 노릇을 했다.하면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단 등에 간부로 참여하여 한국인을조선인을 일제가 벌이는 전쟁터에 내보내는 데 앞장섰다앞장서며 일제 말기에 전형적인 친일파 노릇을 했다. 박인덕도 대표적인 신여성이자 엘리트였지만 마찬가지였다.<ref name="shinhwagh"/> 해방이해방 된 뒤 그들은 자신들의 수치스런 친일 경력을 가릴 방패막이가 필요하였다. 이화이화학당 출신의 애국자를 발굴해 크게 부각시킴으로서부각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죄과를죄과와 덮으려친일경력을 가릴 것이다.방패막이로 거기에삼으려 했는데, 이를 알맞은위해 인물로그들이 유관순이선택한 선택된애국열사가 것이다유관순이었다.<ref name="shinhwagh"/>
 
따라서 그들은 유관순을 실제 이상의 영웅으로 신화화하는 데에 몰두한다열을 올렸다. 박인덕도,박인덕과 최초로 유관순의 전기를 쓴 전영택도전영택은 유관순을 잔다르크에 비유하였다. [[잔 다르크]]는 [[백년전쟁]] 때 [[잉글랜드]]에 몰려 수세에 처해 있던 [[프랑스]]를 구한 신화적인 영웅이었다여성영웅인 [[잔 다르크]]에 비유하였다. 유관순을 조선을 구한 잔다르크로잔다르크에 표현하면서비유하면서 유관순을 신통한 능력을 가진 신화적인신화적 존재로 승격시켰다각인시켰다.<ref name="shinhwagh"/> 또한 [[3·1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대략 7천5백7천500 명이다. 따라서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유독 유관순만 특별하게 기억할 이유는 없었다<ref name="shinhwagh"/>는 비판도비판이 나오고 있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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