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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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돌아온 그는 갑자기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무슨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미망인이 된 카토의 딸, 포르키아 카토니스와 결혼하였다. 카이사르의 밑에서 그는 계속 출세하여 [[기원전 44년]] [[법무관]]에 임명했다.
 
=== 쿠데타, 카이사르 암살처형 ===
[[기원전 44년]]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고 점차 왕위를 노린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카이사르의 반대파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카이사르의 암살을처형을 모의했고 브루투스를 그들의 중심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삼촌인 카토와 현재의 부인인 카토의 딸 포르키아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3월 15일]] 브루투스는 암살자들과반란자들과 함께 카이사르를 원로원 회의장에서 암살했다처형했다. 암살자들이반란자들이 너무나 허둥대는 바람에 서로를 찌르기도 했고 브루투스도 손에 상처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암살쿠데타 직후 브루투스는 "폭군은 죽었다!(''Sic semper tyrannis'')", "자유가 회복되었다!" 고 외치며 원로원 회의장 밖으로 나왔지만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 암살쿠데타 이후 ===
암살쿠데타 다음날,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들을 상대로 암살의쿠데타의 정당성을 연설했으나 폭도로 변한 시민들과 카이사르의 군단병들의 위협을 받았다. 그 기세에 눌려 암살파들은반란파들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타협하여 카이사르의 유지를 받들기로 하고 목숨을 부지하였다. 브루투스는 성난 군중을 피해 로마에서 달아나 이탈리아 이곳저곳으로 피해다니다가 나중에 안토니우스와 타협하여 [[마케도니아 (로마)|마케도니아]] 속주 총독자격으로 망명하듯 떠났다.
 
한편 로마에서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서서히 [[옥타비아누스]]가 부상하고 있었고 그는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고 카이사르 암살파에처형파에 대한 복수에 나섰다. 브루투스는 암살반란 공모자인 [[가이우스 카시우스]]와 함께 그리스에서 군사를 모집하였고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군을 맞아 싸울 준비를 하였다. [[기원전 42년]] 마케도니아 동부에서 벌어진 두번에 걸치 [[필리피 전투]]에서 첫전투에서는 브루투스군이 옥타비아누스군을 이겼고 안토니우스군은 카시우스를 이겼다. 카시우스는 자살하고 홀로 남은 브루투스도 두 번째 전투에서 패하자 자살했다.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의 유해를 화장하여 어머니인 세르빌리아에게 보냈다.
 
{{플루타르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