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 (대종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Intuitio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조단향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중광'''(重光)이란 어둠에 잠겼던 [[대종교]]를 다시 밝히면서 광명세계를 이끈 한배검([[단군]])의 교단이 다시 이어졌다는 뜻으로 대종교의 제1세 교주인 홍암대종사 [[나철]]이 [[1909년]] 음력 [[1월 15일]]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 대례(大禮)를 행한 뒤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공포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종교는 반만년 전 [[단군]]이 세운 [[한민족]]의 고유 [[종교]]인 [[단군교]]를 이은 것인데 [[고려 원종]](元宗) 때에 와서 단군교의 전통이 일시 끊겼던 것을 [[조선]]말 홍암대종사가 다시 드러내 밝힌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단군교 재건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지 대종교의 창립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재건·중흥의 의미로 중광이라는 말을 쓴다.
대종교가 중광한 장소는 [[국학인물연구소]] 조준희 소장에 의해 옛 취운정터 아래 가회동 14번지로 밝혀졌다.<ref>[http://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352 대종교 중광터 103년 만에 최초로 발견]</ref>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