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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수'''(崔忠粹, ? ~ 1197년)는 [[고려시대]] 중기의 무신이다. [[고려]] [[상장군]] [[최원호 (고려)|최원호]](崔元浩)의 둘째 아들이며, 무신 집정 [[최충헌]]의 친동생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1196년]]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과 비둘기 문제로 시비가 붙어 [[최충헌]]의 쿠테타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 뒤 형 [[최충헌]], 조카 [[박진재]]와 함께 쿠테타를 일으켜 [[이의민]] 일파를 제거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형 [[최충헌]]과 갈등했고, [[1197년]] 형 [[최충헌]]과 싸우던 중 살해되었다전사하였다. 본관 우봉(牛峰)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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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최충헌]]과 함께 [[이의민]](李義旼)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1196년]] [[3월]] 미타산 별장에서 형 [[최충헌]], 외조카 [[박진재]] 등과 함께 [[이의민]]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 [[이의민]] 등이 약탈한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뒤 권력을 명종에게 이양하는 듯 하였다. 그 공로로 바로 97년 수충찬화공신(輸忠贊化功臣)에 책록되었다.
 
그러나 형 [[최충헌]]과 함께 명종을 창락궁(昌樂宮)에 감금, 유폐시키고, 태자 도(濤)를 강화(江華)로 몰아낸 뒤 명종의 친동생 평량공(平凉公) 왕민(王旼:神宗)을 추대하여 [[신종]]으로 왕위에 오르게 하여 수성제란공신(輸誠濟亂功臣)에 녹훈된 뒤 삼한정광중대부(三韓正匡中大夫) 응양군상장군(鷹揚軍上將軍) 위위경도성지사(衛尉卿都省知事) 주국(柱國)이 되었다. 그 후 태자비(太子妃)를 폐하고 자기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 하였으나 [[이의방]]의 고사를 들어 형 [[최충헌]]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어 외조카 [[박진재]] 역시 형 [[최충헌]]의 편을 들었고, 그는 무리하게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다가 형 [[최충헌]]과 충돌, 사병을 일으켜 형과 싸웠으나 흥국사(興國寺)에서 형에게 패하였다. 임진강(臨津江) 이남에서 다시 거사하기 위해 강을 건너 도망쳤으나 [[경기도]] [[파평]]현(坡平縣)까지 추격당했다. 파평현의 금강사(金剛寺)에 은신했으나 병사들에 의해 발각되어 살해되었다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후 복권된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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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정치군인]]
[[분류:우봉 최씨]]
[[분류:암살된처형된 사람]]
[[분류:살해된전사된 사람]]
[[분류:한국의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