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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욥기]] 33장 4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호흡이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사람안으로 들어오심을 볼 수 있다. 그분은 먼저 잉태되셨고, 아홉달 동안 처녀의 태에 있었으며, 그 후에 태어나셨다.
 
''{{인용문|[[요한복음서]]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br />
''[[요한복음서]] 1장 14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요한복음서]] 1장 1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하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위의 두 구절의 논리 구조를 볼 때에 하나님은 육신이 되었다. 이 구절에서 육신은 창세기 2장 이후, 즉 타락 이후의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단어이다. 이 육신이라는 단어는 항상 소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육신은 타락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사람, 즉 육신이 되었다.
 
''{{인용문|[[로마서]] 8장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br />
''로마서 8장 4절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이것은 그분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서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주의하고 있다. 성서에 오직 요한복음 1장 14절만 있다면 하나님이 죄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로마서 8장 3절이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말한다. 육신의 모양만 있었다는 것은 죄의 본성은 없었다는 의미이다.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은 세가지 단어, 즉 모양과 육신과 죄로 이 구성을 규정했다. ... 성서에서는 [모양으로] 라는 말을 더함으로써 죄의 육신의 모양과 외양은 지녔지만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 죄가 없음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