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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극의 전형적인 소재인 가정 비극을 통속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는 임선규의 작품은 자연스러운 일상적 대사와 기교적 구성, 관객을 울리는 처절함이 특색이며, 한국적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의 연극은 지방 공연 때 몰려드는 관객 때문에 배우들이 묵을 숙소가 없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하는 연극 경연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일제에 협력하는 활동을 했다. 조선총독부가 친일 연극 단체로 결성시킨 [[조선연극문화협회]]의 이사를 맡았으며, 지원병 제도를 찬양하는 《동백꽃 피는 마을》을 발표하고 관제 연극경연대회에는 《빙화》, 《꽃피는 나무》, 《상아탑에서》를 잇따라 출품했다. 연극인총궐기예능제 출품작인 《성난 아시아》를 공동 집필했고 극단 조선연극사 창립기념작품 《새벽길》을 집필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 한동안 작품을 쓰지 못하다가 [[1945년]] 12월에 〈그 여자의 반생〉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남조선로동당]](남로당) 계열에서 활동하였으나 [[김두한]]에 의한 [[심영 (배우)|심영]] 테러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등 활동이 불가하게 되자, [[1948년]]경 부인 문예봉을 뒤따라 월북했다. [[미군정]] 시기의 활동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데, 이 무렵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설과 함께 멜로극 위주의 통속물 작가였던 임선규가 급격히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풍으로 전환하기에는 정치적 신념이 그리 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