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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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
부보상은 [[삼국시대]] 이래 농업생산자·가내 수공업자(家內手工業者)·시장상인 등과 소비자 사이의 물물 교환을 매개하던 행상인이 그 원형일 것으로 생각되고는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공양왕]] 때 부보상을 시켜 소금을 운반했던 기록이 정사에 등장한다. 조선 말기 [[고종]] 때 발행된 혜상공국서(惠商公局序)와 완문(完文)<ref>한성부완문(漢城府完文): [[1879년]](고종 19년) 발행</ref>의 기록에 따르면 부보상들은 자신들의 시작을 [[기자조선]] 때 부상들을 동원 느티나무를 심게한데서 유래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위화도 회군]] 때 보부상의 회두인 토산인<ref>[[황해도]] 토산현(兎山縣)</ref> 백달원이 800여 명의 보부상 회원들을 동원해 군량미를 운반해 줬는데, 왕이 된 이성계가 그들의 공로를 기억하여 각종 행상권을 전담시켰다고 한다. 그후 그들을 단속하고 지원할 '보부청(褓負廳)'을 조선 조정이 설치하면서 공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부보상의 길드적 성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