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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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구택]] || 2003년 3월 ~ 2009년 1월
|-
| [[정준양]] || 2009년 1월 ~ 현재2014년 3월|}
|}
 
김영삼 정부 때는 [[박태준 (1927년)|박태준]] 회장이 임기 중이던 1992년 10월 물러났다. 박태준 회장은 포철을 창업 25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철강업체로 키운 철강업계의 거목으로 꼽혀 왔다. 설립 당시부터 정치 외풍으로부터 포스코를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해 온 박 명예회장은 김영삼 정부와 불화로 결국 정권 수립 직전에 회장직을 내놨다. 1992년 10월 5일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당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박 명예회장은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거절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포철은 긴급이사회를 소집, 박 회장의 사퇴번의를 촉구키로 결의하기도 하였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0060009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10-06&officeId=00009&pageNo=3&printNo=8226&publishType=00020 | 제목 = 朴泰俊거취에 政·財界 술렁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 작성일자 = 1992-10-6 |쪽=3}} </ref> 회장직은 [[황경로]] 당시 부회장이 넘겨 받았다. 10월 9일 오후, 긴급이사회는 대표이사 회장에 황경로 부회장, 대표이사 부회장에 정명식 사장, 대표이사 사장에 박득표 대표이사 부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0100009920101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10-10&officeId=00009&pageNo=1&printNo=8230&publishType=00020 | 제목 = 浦鐵회장, 黃慶老씨 | 작성일자 = 1992-10-10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쪽 = 1}} </ref> 1993년 3월 12일 제25회 정기주주총회에서 신임회장에 정명식 현 부회장, 사장에는 조말수 수석 부사장이 승진, 선임되었다. 또한 박태준 명예회장과 황경로 회장 박득표 사장의 사표가 각각 수리되었다. 황 회장은 임기 6개월을 간신히 채운 것이다. <ref group="주"> 퇴임 후인 1993년 6월 16일, 거래업체와 협력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황경로 전포철회장(62세)과 유상부 전포철부사장(51세)이 특가법위반(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었다. 황전포철회장은 1990년 12월부터 2년동안 조선내화 등 5개 거래업체로부터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박태준 전회장의 뇌물과는 별도로 수차례에 걸쳐 9,200만원을 받은 혐의이다. 유 전포철부사장은 회사의 해외업무를 담당하면서 일본 이토추 상사 포항사무소장 무로다니로부터 공장설비공급권을 달라는 부탁과 함께 모두 8600만원을 받는 등 3개 업체로부터 모두 1억6백만원을 받은 혐의이다. </ref> <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61700209131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6-17&officeId=00020&pageNo=31&printNo=22203&publishType=00010 | 제목 = 거래업체서 거액 별도收賂 黃慶老(浦鐵 前회장) 劉常夫씨(浦鐵 前부사장) 구속, | 출판사 = 동아일보 | 작성일자 = 1993-6-16 |쪽= 31}} </ref>이날 박태준의 측근 인사들도 배제되었다. <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31200209202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3-03-12&officeId=00020&pageNo=2&printNo=22111&publishType=00020 | 제목 = 浦鐵 새회장에 丁明植씨 선출 |출판사 = 동아일보 | 작성일자 = 1993-3-12 |쪽 =7}} </ref> 1993년 말, 박태준은 일본에서 월간지 "한국논단"과의 회견에서 한국 정부와 포철을 강도높게 비난했고, 특히 조말수 사장 등 개혁주의세력을 비난했다. 1994년 1월초, 인사 문제 등으로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 간의 갈등이 발생하였고,<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10800209110004&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4-01-08&officeId=00020&pageNo=10&printNo=22393&publishType=00010 | 제목 = 浦鐵, 파워게임 무성한 추리 | 출판사 =동아일보 | 작성일자 = 1994-1-8 |쪽 = 11}} </ref> 이어 2명 모두 동반퇴진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994년 1월 2명은 사표를 제출하였다. 정명식 회장은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지 1년여 만에 물러난 것이다. 1994년 3월 8일 제26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들 2명의 사표가 수리, 퇴임하였다. 이렇게 약 2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이 주주총회에서 김만제가 새 회장에 선임되었다. <ref> {{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30900209101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03-09&officeId=00020&pageNo=1&printNo=22450&publishType=00010 | 제목 = 浦鐵회장에 金滿堤씨 | 작성일자 = 1994-3-9 | 출판사 = 동아일보 |쪽=1}} </ref> 재무장관 출신의 김만제는 사상 첫 외부인사인 회장이었고 유일한 외부인사 발탁 기록을 남겼다. 당시 포스코 지분을 재무부가 20.0%, 산업은행이 14.7% 보유하던 시절이어서 외부인사에 대한 뒷말이 많았다. 그 전까지 포스코 내부에서는 사장-부회장-회장 순으로 단계를 밟아 승진하는 절차를 깼다는 비판이 컸다. 김만제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4년간 포스코 수장직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