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 정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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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위 문제: 기존의 친명파, 친원파란 구분은 당대 현실에도 맞지 않고 진영논리에 갇혀 사실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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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우왕 14년) 음력 3월, 명나라가 철령위 설치에 착수했다는 보고를 받은 [[우왕]]은 8도의 정예 병사 징발을 명령하고, 스스로 평안도로 행차하겠다고 나서면서 요동 공격 준비를 본격화하였다.<ref name="오종록"> [http://youme.oranc.co.kr/chosun/taejo.htm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까닭 ..... 오종록] </ref>
 
조정은 막강한 신흥세력인 [[명나라]]와의 외교적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하는 주화파(主和派)와 명나라의 지나친 요구에 반감을 품고 [[북원]]과 손을 잡고 요동(遼東)을 쳐서 명나라에 본때를 보이는 실력행사를 하자는 주전파(主戰派)로 국론이의견이 갈렸다.
 
== 경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