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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부(김동소, 2005)는 [[13세기]]를 중세 한국어의 시작점으로 잡기도 한다. 13세기 끝무렵에 한국어는 자음 체계의 큰 변화와 부분적 [[모음추이]]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중세 한국어는 [[18세기]]까지 이어지며, 18세기 초반에 몇몇 모음이 비음운화되고, 이중모음이 단모음화 되거나 원순모음화, 구개음화, 전설모음화와 같은 언어 체계상 큰 변화를 겪어 새로운 근대 한국어의 시기로 넘어가게 된다.
 
== 표기 ==
중세 국어 시기에는 표기법상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 시기 국어 표기에는 주로 향찰, 이두 따위의 차자표기 방식이 사용되어 그 음가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15세기 훈민정음이 발명되어 일반 언중 사이에 널리 쓰이면서 문자 사용 인구가 늘었고, 회화와 문자가 적으나마 일치하게 되었다.
 
=== 받침의 표기 ===
중세 국어 시기에는 표기법상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 시기 국어 표기에는 주로 향찰, 이두 따위의 차자표기 방식이 사용되어 그 음가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15세기 훈민정음이 발명되어 일반 언중 사이에 널리 쓰이면서 문자 사용 인구가 늘었고, 회화와 문자가 적으나마 일치하게 되었다.
 
중세 국어의 받침 표기는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의 대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이는 받침 자모를 새로 만들지 아니하고, 똑같은 형태의 글자를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표기는 기본적으로 표음주의를 따랐기 때문에, 당시에 음가가 구분되었던 받침 'ㄷ'과 받침 ‘ㅅ’을 포함하여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의 8개가 쓰였다.
 
== 음운 ==
당시의 음운은 [[현대 한국어]]의 음운 체계로 변화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 여러 특징이 고루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전까지 독립된 음운으로 기능하지 못했던 [[된소리]] 계열이 등장한 것과 지금과는 다른 몇 가지 자음이 보인다는 것이다.
 
=== 성조의 사용 ===
 
중세 국어 시기에는 성조가 음소로서 기능하였다. 훈민정음에서는 성조를 방점으로 표기하였다. 방점은 글자 왼편에 위치하였다.
예) :어엿 ּּ비너 ּּ겨ּּּ (어여삐 여겨/현대어 뜻으로는 불쌍히 여겨)
학자들은 16세기 중반 문헌까지는 방점 표기가 규칙적으로 쓰인 반면, 그 이후 표기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근거로 중앙어의 성조가 중세 국어 시기 말엽에 소멸한 것으로 추정한다.
 
=== 된소리 계열의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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