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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정책은 그가 죽고 난 뒤 [[고려]]를 왕권다툼의 각축장으로 몰고 가게 된다. 각기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복 형제들을 전면에 내세운 호족들의 왕권 경쟁으로 고려 왕실은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에 휩싸이게 된다.<ref name="pare199629"/> 이에 태조는 이복 남매들끼리의 족내혼을 추진한다.
 
자녀들이 송도에 올라왔으므로 호족들은 반란을 기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호족은 왕실의 외척이라는 신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태조는 이들 호족들이 자신의 외손, 자기 가문의 외손을 후계자로 앉히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자신의 자녀들끼리 [[족내혼]]을 시킨다. 그러나 유력 왕위 계승권자였던 [[고려 혜종|태자 무]], [[태자 태]], [[고려 정종 (3대)|태자 요]]를 족내혼을 시키려 하자 호족들이 반발하였다.
 
이복형제들을 등에 업은 호족들의 움직임도 경계하는 한편으로 이복남매간의 족내혼을 허용하여 왕권 강화를 꾀한다. 또한 이러한 족내혼은 왕실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특별한 조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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