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사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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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인류의 선사시대==
니얼굴 살라살라 니얼굴 파버린다 이장애인아 씨발년 호구새끼 잡년아
=== 구석기 시대 ===
두산의 살인자는 김광렬또는두산의 고자김광렬
이 시기의 기원에 대한 것은 원시 인류가 한반도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이며, 기원전 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빠른 출현이 구석기 태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에는 회의적이다.<ref>Yi Seon-bok and G A Clark. 1983 Observations on the Lower and Middle Paleolithic of Northeast Asia. Current Anthropology 24(2): 181–202.</ref> 구석기는 도기의 생산이 시작되는 [[기원전 8000년]]경에 끝난다. 방사성탄소측정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고대인의 출현은 기원전 4만 년경에서 3만 년경으로 지시한다.<ref>Bae, Kidong. 2002 Radiocarbon Dates from Palaeolithic Sites in Korea. Radiocarbon 44(2): 473–476.</ref> 고대인이 기원전 50만년 경까지 확장된다면, [[호모 에렉투스]]가 한반도에 존재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충청남도]] [[공주시|공주]] 근처의 석장리 유적에서 구석기 시대 태동기의 특징을 가진 유물이 가장 낮은 층에서 발굴되었다. 양면을 뗀 석기와 떼는 도구도 발견되었다. 후기의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로 생각되는 손도끼와 클리버도 발굴되었다.
 
구석기 중기에는 고대인들이 동굴에서 거주를 했으며, [[제천시]] 점말 동굴과 [[청주시|청주]] 두루봉 동굴 등이 그 유적이다. 이 두 동굴 유적에서 코뿔소의 화석 유물과 동굴 곰, 갈색 곰, 하이에나와 여러 종류의 사슴들, 멸종된 종 등의 화석이 발굴되었다.
 
점말 동굴에서 사냥에 사용했던 도구로 보이는 석기는 고대인의 뼈로 만든 것일 것이며, 동물뼈 골각기와 함께 사냥을 하거나 음식을 준비했던 도구로 보인다. 영양 보충을 위한 밤껍질도 발굴되었다.
 
충청남도 공주 근처의 석장리 유적과 다른 강안의 유적에서 구석기 전통을 가진 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가는 규암 바위, 예를 들면 [[규암]], [[반암]], [[흑요석]], [[규질암]], [[규장석]]이 구석기 전기의 아슐리안, 르발루안의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뗀석기들은 모양이 단순하고, 석영이나 화강암(페그마타이트)에서 뗀 것들이다. 석장리의 중기층에서는 투척용 볼라와 투척용 돌이 발굴되었다.
 
[[한국의 구석기 시대]]는 다시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이 중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인류]]가 남긴 유적은 주로 구석기 후기 이후의 유적에서 나타난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屈浦里), [[평양직할시]]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검은모루]],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全谷里),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石壯里), [[충청북도]] [[청원군]] [[만수리]]<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1260174&top20=1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 베이징 原人과 동시대 것」, 동아닷컴, 2007.11.26.]</ref>를 손꼽을 수 있다. 이들 유적지의 발생 연대는 오늘날 고고학계에서 약 50여 만 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 또는 강가에 집을 지어 작은 군집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생활은 대체로 짐승의 사냥과 과일이나 열매 등의 식물 채집에 의존한 것으로 여겨지며, 집단 생활을 하게 된 동기는 세계의 다른 지역의 모든 석기시대의 사람들처럼 보다 효율적인 사냥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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