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사고 수습 (4월 17일~): 10일째 수습상황 입력
(→‎사고 수습 (4월 17일~): 10일째 수습상황 입력)
사고 발생 9일(4월 24일), 오후 10시까지 시신 16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75명). 이날은 수색에 가장 적합한 소조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람들은 잔잔한 물살 때문에 혹시 성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생존자 소식은 여전히 없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history/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4220011348|제목=사망자 175명으로 늘어..가족들 더딘 수색 작업에 불만|출판사=JTBC|저자=서복현}}</ref>
 
사고 발생 10일(4월 25일), 수색은 3층 앞쪽 객실과 4층 객실이 중심이었다. 4층 뒷부분 단체객실에는 사고 당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층 뒤쪽 객실은 탈출한 선원들이 사용하던 곳이어서 수색에서 제외됐다.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90도 기운 채 가라앉은 상태였고, 선박 왼쪽은 해저면에 닿아 있고 오른쪽이 수면을 향한 상태였다. 수색팀은 세월호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세월호의 오른쪽 창문 등 주요 진입지점으로 연결된 가이드라인을 이용, 한 번에 잠수부 6~8명을 투입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익일에 이어 오전까지 3, 4층 우현 객실 수색을 모두 마치고 복도로 수색 범위를 넓혔다. 복도로 향한 우현 객실문을 열거나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일부 중앙 객실 진입에도 성공해 수색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신 16구를 수습했다(사망 181명). 그러나 일부 중앙 객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선체가 기울어져 발 아래쪽에 있는 중앙 객실문을 당겨서 열어야 했고, 캐비닛 등 이물질이 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부유물과 시계 역시 문제가 되었다. 사고 당시 배 왼편부터 물에 잠겨 좌현 객실에 시신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 유속이 느린 소조기가 끝나 다시 매일 초속 0.1~0.2m씩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 되었으나, 이를 극복할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였다. 해군은 전날 다관절 탐사로봇 크랩스터를 투입, 사고 후 최초로 선체 전체에 대한 초음파 영상을 촬영했다. 그러나 이 영상을 수색에 활용하려면 분석 등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history/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5033906054|제목=[세월호 참사] 25일부터 유속 다시 빨라지는데.. 묘수없어 수색작업 난항 예고|출판사=한국일보|저자=이성택}}</ref>
사고 발생 10일(4월 25일),
 
=== 수습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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