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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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관 설비사 김홍경'''(58)은 제주도에 있는 건축회사에 첫 출근을 하던 중 사고를 겪었다. 그는 배가 기울어지던 30여분 동안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방호스와 커튼을 묶어 선박 1층에 있던 학생 20여 명을 6~7m가량의 위층 난간으로 올려주었고 그 자신을 포함하여 이들은 모두 생환하였다. 그는, 그 사이에 1층에는 물이 가득 차는 바람에 더 많은 학생들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ref name="구명줄 만들어 20여명 구조">{{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6190107703|제목=<여객선침몰> 20여명 구하고 마지막 탈출한 김홍경씨|출판사=연합뉴스|저자=특별취재팀|날짜=2014-04-16|확인날짜=2014-04-16}}</ref> '''화물 운전기사 김동수'''(49)는 사고 당시, 여객선 3층 화물운송 기사 전용 객실에서 동료 기사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배가 기울자 일반 객실이 몰린 4층으로 이동해 호스와 밧줄을 던져 10여 명의 사람들을 구하고 생환하였다. 특히, 그가 구한 이들 가운데는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다가 사고를 당한 어린이 권지연(5, 여)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 name="10여명 구한 화물기사">{{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special/5/newsview?newsId=20140417182308507&specialId=5|제목=<nowiki>[진도여객선침몰]</nowiki>제주 화물차 기사 목숨 걸고 학생 등 생명 구해|출판사=뉴시스|저자=강제남|날짜=2014-04-16|확인날짜=2014-04-16}}</ref>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고발생 후 많은 일들을 하였다. 전국에서 쏟아지는 위문품에 진도우체국은 거의 마비가됐다. 주말도 반납한 채 우체국 전 직원이 근무했다. 22일까지 진도우체국에 도착한 위문품은 등기로 온 것만 3천300상자. 일반우편으로 온 것은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우체국의 한 직원은 "주로 학교에서 보내오는 물품이 70% 정도 된다. 여성단체나 봉사단체에서도 많이 보내오고 있다"면서 "상자 겉면에 내용물을 적어 보내 분류를 한다. '기적처럼 태어났으니 기적처럼 돌아오라'라는 감동적인 문구도 적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하루 8t 트럭 1대 정도 처리하는데 요즘은 4대도 넘는다. 진도군민을 대신해 국민들의 마음에 정말 감사하고 몸이 고되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진도와 목포 시민도 구조대와 사고 현장에 나온 취재진에도 호의를 베풀었다. 목포에서 사업을 하는 서아무개는 생업을 제쳐두고 사고 첫날부터 일주일째 인근 서망항에서 무료로 음료를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참사에 괜스레 송구한 마음이 들어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다. 미약하지만 도움이 되도록 끝까지 구조현장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진도군 주민 김아무개도 사고 현장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잠수사들을 위해 지인들에게 부탁해 빵과 음료, 바나나, 생수 등을 손수 포장해 보냈다. 그는 "잠수사들이 잘 먹고 힘을 내야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정성을 보탰다"고 말했다. 진도읍의 한 상점 문에는 '문 닫은 시각이라도 물건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주면 나오겠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목포시도 승무원 박지영(22·여)의 빈소를 마련해 주고, 생존자들에게 구조금 10만원씩을 전달했다. 속옷과 화장품을 파는 한 상점 주인은 "저도 19일까지 낮에 잠시 가게를 비우고 교회 사람들과 팽목항에 봉사를 다녀왔다"며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던데 실종자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외에 세월호 현장에서 청소와 빨래를 맡는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와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식사와 물을 준비했다. 대한적십자사 전남지부장 박춘심(59)은 "부모들은 얼굴만 봐도 부모라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입이라도 축이라는 말조차 붙일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세탁해드립니다'라는 푯말을 들고 조용히 가족들 사이를 다니며, 장기간 세탁을 못한 가족들을 위해 빨래를 돕는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의료단체도 진도로 몰려들었다. 의료진들은 체육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실신하거나 진료가 필요한 가족들의 상태를 살피고 즉각 링거 수액 등 의료 조치를 취하고 있다. 특히 가족들의 경우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서울대병원 등은 체육관 뒷편에 심리상담실을 비롯한 현장응급의료소를 마련했다. 의료소 천막 안에는 가림막이 세워져 있고, 필요한 사람들은 24시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가족들이 머물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운동복과 세면도구 등 생필품과 각종 식음료를 비롯한 구호물품을 곳곳에 비치했다. 긴급한 전화를 걸 일이 생기는 가족들을 고려한 휴대전화 충전 서비스, 공기 주입기로 바람을 넣는 일회용 베개, 정신력과 체력이 고갈되는 가족들을 위한 청심환이나 각종 비타민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이런 가운데 체육관에서는 "정부가 못하는 것을 민간 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또 국민들은 실종자들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여 노란 리본 캠페인이 확산되었고,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슬픔·분노 지수는 평균 83.8에 달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ocutnews.co.kr/news/4011990|제목=세월호 실종자 가족들 모여있는 진도체육관, 세심한 봉사 이어져|출판사=노컷뉴스|저자=김지수}}</ref><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40423_0009605348|제목=[세월호 참사]자원봉사하는 시민들|출판사=뉴시스|저자=박영태}}</ref><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22/0200000000AKR20140422103700055.HTML?input=1179m|제목=<세월호참사> 전혀 '미개'하지 않은 성숙한 국민들|출판사=연합뉴스|저자=특별취재팀}}</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3/2014042300176.html|제목=[세월호 참사 / 슬픔 나누는 국민들] "아픔을 함께 해요"… 노란 리본, 온 국민의 가슴 채우다|출판사=조선일보|저자=최연진}}</ref><ref>{{뉴스 인용|url=http://dailymedipharm.com/news_view.jsp?ncd=16813|제목=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한 슬픔·분노 지수 ‘83.8’|출판사=데일리메디팜|저자=김인수}}</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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