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청해진해운 자체 문제 관련: 출처입력바랍니다)
사고가 나기 2달 전, [[2014년]] [[2월]] 에 10일에 걸쳐 정밀검사를 받았었다고 한다.<ref>뉴시스, [http://news.donga.com/Main/3/all/20140416/62805208/1 세월호, 2월에 10일간 정밀검사 받아], 동아일보, 2014년 4월 16일</ref>
 
=== 청해진해운소속해운사 ===
청해진해운은세월호가 소속되어 있는,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포함해서 여객선 4척을 갖고 있었는데, 이전에도 해상 사고가 잦았다. 사고 발생 3주 전에는 데모크라시호가 안개가 짙은 해상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34노트로 운항하다가 조업 중인 어선과 충돌했다. 또한 연료필터 문제로 5시간이나 표류한 적이 있는가 하면, 엔진 고장으로 바다에 멈춰 선 적도 2차례가 있었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 진수일로부터 20년이던 여객선 운용 시한을 30년까지 늘어났다. 청해진해운은 이 개정 덕분에,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상 폐선에 가까운 18년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 이후 세월호 관련하여,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임급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증축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심지어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책임은 과징금 3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세월호의 경우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 내항선 선박직(선장·항해사·조타수·기관사 등)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 1천원을 썼다.<ref name="s18">[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7244 청해진해운 이전에도 '표류'…참사 부른 배짱 운행], [[SBS]] 2014년 4월 22일</ref><ref name="m19">[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42215321225070&outlink=1 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머니투데이]] 2014년 4월 22일</ref>
{{본문|청해진해운}}
 
사고 선박의 소속사 [[청해진해운]](淸海鎭海運, {{llang|en|Chonghaejin Marine Co., Ltd.}})은 1999년 3월 10일에 설립된 [[대한민국]]의 여객 운송 기업이다. 청해진해운은 인천-제주, 인천-백령도, 여수-거문도 등의 정기 연안여객선 사업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인천-제주 간 노선은 독점 운항하고 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16/0200000000AKR20140416219800065.HTML?input=1179m 사고 여객선사 청해진해운은], [[연합뉴스]] 2014년 4월 16일자</ref> 2010년 2월, 2대 주주로 있던 [[한강]] 수상택시 운영 주목적의 수상 여객 운송기업 주식회사 즐거운서울을 흡수 합병하였다. 이후 [[서울특별시]] 한강 수상택시 사업에 진출하였다.<ref name=cmcline>[http://www.nocutnews.co.kr/news/4008285 ‘세월호’ 운항 청해진해운은 어떤 회사?], [[노컷뉴스]] 2014년 4월 16일자</ref> 사업자 등록은 [[제주시]] 제주항 제1여객터미널 내에 두고 있으며,<ref>[https://www.kisreport.com/kisreport.asp?s=SR04201&upchecd=114104 Kisreport : 청해진해운 기업정보]</ref> 주사무소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 두고 있다.<ref name=cmcline /><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17215407387 청해진 해운, 경영난에 무리한 운항 했나?], [[문화방송]] 2014년 4월 17일</ref><ref>[http://www.cmcline.co.kr/index.htm 청해진해운 홈페이지] 회사소개-지역본부 안내</ref>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포함해서 여객선 4척을 갖고 있었는데, 이전에도 해상 사고가 잦았다. 사고 발생 3주 전에는 데모크라시호가 안개가 짙은 해상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34노트로 운항하다가 조업 중인 어선과 충돌했다. 또한 연료필터 문제로 5시간이나 표류한 적이 있는가 하면, 엔진 고장으로 바다에 멈춰 선 적도 2차례가 있었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 진수일로부터 20년이던 여객선 운용 시한을 30년까지 늘어났다. 청해진해운은 이 개정 덕분에,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상 폐선에 가까운 18년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 이후 세월호 관련하여,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임급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증축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심지어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책임은 과징금 3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세월호의 경우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 내항선 선박직(선장·항해사·조타수·기관사 등)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 1천원을 썼다.<ref name="s18">[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7244 청해진해운 이전에도 '표류'…참사 부른 배짱 운행], [[SBS]] 2014년 4월 22일</ref><ref name="m19">[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42215321225070&outlink=1 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머니투데이]] 2014년 4월 22일</ref>
 
=== 안전검사 및 운항관리 ===
;운항관리사
 
=== 맹골수도사고해역 ===
맹골수도는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이순신맹골수도]] 장군이위치한 곳으로, [[명량대첩전라남도]] 승리로[[진도군]] 이끈[[조도면]] 전남[[맹골도]]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거차도]]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사이이다. 최대 6노트로 물살이 빠르다.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해역은곳은 '맹골수도'로조류가 서해세고(최대 통과6노트) 주요 항로이다. 인천 등 서해에서 남해로 가는 여객선[[대한민국]]에서는, 대형[[이순신]] 선박이장군이 주로[[명량대첩]]을 이용한다.승리로 1일이끈 평균 수백 척이 통과하는[[울돌목]] 해역이다다음이다.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지만 항로로 이용되는 수로는 깊이 30m 이상으로 암초 등 항해 장애물은 없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여객선침몰> 사고해역 '맹골수도' 어떤 곳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866239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특별취재팀 |날짜 = 2014-04-16 |확인날짜 = 2014-04-16 }}</ref>
{{본문|맹골수도}}
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맹골수도(孟骨水道) 로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 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수도 (지리)|수도]] 이다.
 
맹골수도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 최대 6노트로 물살이 빠르다.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이 해역은 '맹골수도'로 서해 통과 주요 항로이다. 인천 등 서해에서 남해로 가는 여객선, 대형 선박이 주로 이용한다. 1일 평균 수백 척이 통과하는 해역이다.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지만 항로로 이용되는 수로는 깊이 30m 이상으로 암초 등 항해 장애물은 없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여객선침몰> 사고해역 '맹골수도' 어떤 곳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866239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특별취재팀 |날짜 = 2014-04-16 |확인날짜 = 2014-04-16 }}</ref>
 
== 원인 ==

편집

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