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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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으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인조]]는 무능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만약 그가 세계정세에 조금만 관심이 있았더라면 [[병자호란]]과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도 잇따른다. 친명배청주의자인 인조가 즉위한 이후 조선은 외교 기조를 실리외교에서 친명외교로 바꾸었다. 그래서 광해군의 밀명을 받아 청에게 항복했던 [[강홍립]],[[박난영]]의 일가친척을 전부 몰살시켰고 척화파를 중용하였다.
 
그리고 [[인조]]는 청을 형의 나라로 인정하겠다고 타협책을 제시한 후 회답사로 [[강홍립]]의 숙부인 [[강인]]을 가짜 형조판서로 꾸며 회답서를 보냈으나 이 문서에서문서엔 명이 내려준 연호를 사용하는 등 청을 자극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분노한 청나라 사신은 4만 필의 옷감과 소 4천 마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화의는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조선은 할 수 없이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다른 일화도 있다. [[병자호란]] 중에 청나라는 포위된 [[남한산성]]을 향해 "임금의 아우와 대신을 인질로 보내면 항복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병력을 물리겠다"는 문서를제안을 보냈으나하자 인조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가짜 관복을 입히고사람을 보냈으나 [[용골대]]가 본인들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항복조건을이번엔 세자로 거듭세자를 요구했다. 이처럼 인조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에서도 꼭 손해를 보았던 인조는 덜떨어진 외교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보았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