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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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아테네]]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의 산투차 역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50여 편의 넘는 오페라, 가곡의 배역을 맡았고 20편 이상의 오페라 전곡을 음반으로 녹음했다. 이어 1940년 그리스 국립 리사이틀 테아트레(Lyric Theatre)에서 주페의 오페레타 《[[보카치오]] (Boccaccio)》를 선보였고, [[1941년]] 히다르고 교수의 추천으로 마리아는 아테네 오페라단의 평생 회원의 자격을 얻었다.
 
=== 데뷔오페라 초기가수 생활 ===
==== 데뷔 초기 ====
[[1944년]] 7년만에 아버지 요르요스의 편지를 접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3일]] [[아테네]]에서 솔로 리사이틀 겸 작별 콘서트를 하고 미국으로 갈 여비를 모았다. [[1945년]] [[9월]]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였으며 단역을 전전했다. 그 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응모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하였고, 95kg의 거구가 지적받자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하여 감량에 성공한다. 칼라스의 회고에 의하면 영화 [[로마의 휴일]]의 주연 [[오드리 햅번]]의 미모에 반한 것이 다이어트의 계기가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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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에 베로나 음악제에서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 (La Gioconda)》의 타이틀 롤을 불렀고, [[8월 3일]]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라 조콘다]]》를 불러 [[이탈리아]]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한때 이탈리아인들이 일부 소프라노 등에게 붙이는 "라 디비나 (오페라의 성자)"라는 별칭을 받기도 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으나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해 주목받지 못하다가, [[1947년]] [[12월]] 베니스에서 [[이탈리아어]]로 상영되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역에 캐스팅되고, 바로 [[자코모 푸치니]]의 [[투란도트]]의 타이틀롤로 주목을 받아 재계약을 맺게 되었다. 베로나 아레나 공연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지오반니 바티스타 매네기기]]는 그의 후원자가 되었다. 이후 주로 투란도트를 공연하였다.
 
==== 연애와 결혼 ====
한때 연극, 영화감독이었던 [[루치노 비스콘티]]와 사랑에 빠졌으나 곧 결별하였다. [[1946년]] [[지오반니 바티스타 매네기기]](Giovanni Battista Meneghini)를 만나고, 매네기기는 곧 그의 팬이자 열렬한 후원자, 매니저가 되었다. [[1947년]] 28년 연상의 매네기기와 동거하다가 곧 결혼하였다. 지오반니 매네기기는 그의 음반과 각종 활동비용을 후원하였고 칼라스는 노래와 오페라, 가극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1957년]] 선박왕 오나시스를 만나면서 먼저 이혼을 요구하여 이혼하였다.
 
결혼식 직후 친정어머니 에반겔리아는 내 딸 칼라스라는 책을 내 그를 인신공격하였다. 또한 방송에 출연한 에반겔리아는 "마리아같은 여자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이후 칼라스는 친정 가족들과의 [[의절]]을 선언하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리스]]에서의 데뷔를 포기한 칼라스는 미국, 이탈리아에서 데뷔를 시도한다. 이후 그는 마리아 메네기기 칼라스(Maria Meneghini Callas)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이혼 후 다시 마리아 칼라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 오페라 가수 생활 ===
==== 이탈리아에서의 활동 ====
1947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단에 입단하고, 《[[청교도]] (I puritani)》의 단역으로 캐스팅되었으나 주인공 엘비라 역으로 낙점된 [[마르가리타 카르시오]](Margherita Carosio)가 [[독감]]에 걸려, 예정에 없이 그가 캐스팅되었다. 대역으로 투입된 칼라스는 3일의 연습으로 무대에 섰는데 호평을 받았다. 이어 [[레나테 테발디]]가 갑자기 아프게 되어 [[아이다]]의 주연 아이다 역을 맡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 스칼라 오페라단은 칼라스에게 아이다 역의 대역으로 투입했고, [[아이다]] 공연으로 크게 호평을 받으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청교도》의 엘비라 역, 《아이다》의 아이다 역, 《토스카 Tosca》의 토스카 역 등을 소화해낸 뒤 《노르마》, 《루치아 디 람메르무어(Lucia di Lammermoor)》 등의 주인공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토스카 공연 중에는 열연하던 중 가발에 불이 붙었으나 끝까지 아리아를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