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마립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8호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Yjs5497 bot (토론 | 기여)
잔글 맞춤법 교정. 사용자:yjs5497_bot의 맞춤법 교정목록을 참조하세요 using AWB
17번째 줄:
[[459년]] 음력 4월 [[왜]]인들이 병선 백여 척으로 습격하고 [[경주 월성|월성]]을 에워쌌다. 신라군은 마립간의 지휘에 따라 성에서 지키다가 적이 퇴각하는 것을 기다려 추격, 바다 어귀로 몰아 물에 빠져 죽게 한 적병이 절반이 넘었다. [[462년]] 음력 5월 다시 왜가 쳐들어와 활개성을 점령하고 백성 1천여를 생포했다. 이듬해인 [[463년]] 음력 2월 또다시 쳐들어와 삽량성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마립간이 벌지와 덕지에게 명해 매복해 있다가 후퇴하는 왜병을 요격, 크게 이겼다. 이 해 왜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변경에 두 개의 성을 쌓고 음력 7월에 군을 사열하였으며, [[467년]]에는 [[전함]]을 수리했다.
 
[[468년]] 봄, [[고구려]]와 [[말갈]]이 [[실직]]을 습격하였다. 이해 음력 9월 [[하슬라]] 주민중 15세 이상 되는 자들을 징집해 이하에 성을 쌓았다. 마립간은 이후 방위체계 확립에 주력, [[469년]] 음력 4월의 수해 복구를 위해 음력 7월에 신라 전역을 순행했으며, [[470년]] [[삼년산성삼 년산성]]을, [[471년]] [[모로성]]을 쌓고, [[473년]] 명활성을 수리했으며, [[474년]] 일모, 사시, 광석, 답달, 구례, 좌라 등의 성을 쌓았다.
 
[[475년]] 음력 7월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치자, [[백제 개로왕|개로왕]]이 태자 [[백제 문주왕|문주]]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니 마립간이 백제에 원군을 보냈으나, 신라군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가 무너지고 개로왕은 이미 살해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신라본기]]에는 [[474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고구려본기]]나 [[백제본기]]에는 모두 475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신라본기의 기록이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