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소조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我想和上海美女主播司雯嘉做愛!
편집 요약 없음
38번째 줄:
}}
 
'''청나라 소조정'''(淸國 小朝廷, {{llang|zh|遜清皇室小朝廷}})은 [[1912년]] [[청나라]]가 공식적으로 멸망하여 [[중화민국]]이 건국된 이후, 약 12년간 유지되었던 구황실을 의미한다. '''청실 소조정'''(清室小朝廷), '''자금성 소조정'''(紫禁城小朝廷), 선통소조정(宣統小朝廷), 부의소조정(溥儀小朝廷)이라고도 한다.
 
== 개요 ==
1912년 2월 12일, [[융유태후]](隆裕太后)는 《[[청실우대조건]](淸室優待條件)》을 받아들이고 《[[선통제 퇴위조서|퇴위조서]](退位詔書)》를 반포하여, 이로써 [[청나라]]는 종언을 맞았다. 《청실우대조건》에 이르기를, "[[청나라의 황제]]는 퇴위 후에도 [[존호]]가 변하지 않으며, [[중화민국]] 정부는 청 황제를 외국 군주의 예로서 대우한다. 국민정부는 청 황제에게 매년 400만 냥을 지급한다. 청 황제는 퇴위 후 잠시 자금성에서 거주하며, 시위인(侍衛人)은 계속 고용할 수 있다. 왕공작위는 예전과 같이 한다" 등등이라 하였다.
 
[[선통제]](宣統帝) [[부의]](溥儀)가 퇴위한 후 중국에서 [[황제]]제도는 폐지되었으나, 부의는 원래의 황실 대신 등과 같이 황궁 내에서 거주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ref>{{cite web | language = 簡体中文 | publisher = 人民網>歷史上的今天 | title = 1924年11月5日 封建王朝末代皇帝被趕出皇宮 | url = http://www.people.com.cn/GB/historic/1105/3714.html | author = 人民網資料 | date = 2003年08月01日 | accessdate = 2003年08月01日}}</ref>. [[자금성]] [[천안문]](天安門), 태화전(太和殿), 보화전, 무영전, 문화전 등의 외조(外朝)는 [[중화민국|민국]] 정부가 소유, 관리하고 있었으나, 내조(內朝)는 여전히 청나라 황실이 소유하고 있었다.<ref>레지널드 존스턴 저, 김성배 역, 《자금성의 황혼》, 637p. 지도</ref> 황궁인 [[자금성]](紫禁城) 내에서 생활하는 동안, 부의는 이전처럼 "상유(上諭)"를 반포했고, [[선통]](宣統) 연호를 음력과 같이 사용하였으며, 궁 내에는 이전처럼 [[내무부]](内務府), 종인부(宗人府)와 신형사(愼刑司) 등의 기구를 두었다. 옛 신하들에게 [[시호]](諡號)를 내리거나, 옛 의관을 고치지 않았다. 청나라의 법을 범한 자는 신형사에서 처리하는 등, 자금성 안은 "'''나라 안의 나라'''"였다.
 
그러나 1924년 10월 23일 [[풍옥상]](馮玉祥)이 정변을 일으키고 같은 해 11월 5일 오전, 풍옥상파 군대가 자금성을 포위하며 부의의 출궁을 요구하자, 부의는 자금성을 떠나야 했다. 그와 함께 청나라 소조정도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