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21번째 줄:
 
== 죽음 ==
지상에 나온 오르페우스는 여성과의 접촉을 일체 멀리하고 대신 소년들과만 관계를 맺으며 [[오르페우스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디오니소스]]가 [[트라키아]]에 방문했을 때 오르페우스는 새로운 신을 존경하지 않고 단지 [[헬리오스]](오르페우스는 이 신을 [[아폴론]]이라고 불렀다)가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말했다. 이것에 화난 디오니소스는, [[마케도니아]]의 데이온에서 [[마이나스]](광란하는 여자)들에게 오르페우스를 덮치게 해 마이나스들은 오르페우스를 여덟 조각으로 찢어 죽였다<ref>그레이 부스 『그리스 신화』 28장d</ref>. 또는 마이나스들이 분노한 이유는 오르페우스가 여성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는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동성애자에게 떨어진 천벌의 예로 들었다.
 
마이나스들은 오르페우스의 목을 헤브로스 강에 던졌다. 그러나 목은 노래를 부르면서 강을 흘러 바다에 나가 [[레스보스 섬]] 해안에 당도했다.<ref>ibid. 28장d, g</ref>. 주민들은 예를 갖추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묻었고 그 후 레스보스 섬은 오르페우스의 가호에 의해서 많은 문인을 배출하게 되었다. 또 뮤즈들은 그의 리라를 하늘에 안치했다. 이것이 [[거문고자리]]이다.